위저드 베이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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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평
<위저드 베이커리>. 이름만큼이나 비밀스럽고 환상적인 이야기. 시적이고 섬세한 문장들, 독특한 소재, 유머와 적당한 긴장감, 그리고 풍푸한 상상력으로 구워낸 놀라운 작품이다.
어릴 적 어머니의 자살을 목격하고 언어장애를 앓게 되었으며, 무뚝뚝한 데다 성적인 문제까지 있는 아버지, 그리고 자신을 적대시하는 새엄마와 새엄마의 딸인 무희까지. 이런 현실에서 존재하기 어려운 가정상황을 끌어왔다는 것이 억지스러울 수 있지만 마법의 레시피로 구워진 빵을 만드는 제빵사와 낮이면 사람으로 변하는 파랑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그러나 너무 매력적인 현대판 마법사의 이야기를 우리말로 풀어냈다는 것이 놀랍다.
그리고 이 책은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Y/N로 결말을 처리한다. 그리고 Y도 N도 우리의 편견을 뒤엎는다. 마법이 이루어지는 경우, 우리는 행복한 결말을 생각하지만 마법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더 나쁜 일이 일어나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마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결코 나빠지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렇게 ‘삶에 어떤 문제가 닥치든, 그것은 마법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을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이유는 과거나 현재에 머물지 않고, 시간이란 미래를 향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이런 명언에나 나올 법한 주제를 이렇게 딱딱하지 않게, 무겁지 않게, 환상적인 이야기로 풀어내기는 쉽지 않다고 본다. 더구나 환상의 이야기 속에 숨겨진 현실과 미래에 대한 긍정이라니. 멋진 아이러니가 아닌가.
청소년기라는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쩌면 잊기 위해 판타지 소설이나 판타지 게임을 즐기고 있을 우리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2. 인상 깊은 구절
-- 빵 한 입에 우유 한 모금 물고서, 건조하지도 눅눅하지도 않은 오늘분의 감정을 꼭꼭 씹어, 마음 속 깊숙이 담아둔 밀폐 용기에 가두기 위해.(13쪽)
(주인공이 보름달빵 이후 좋아하지 않는 빵을 먹는 이유. 무언가를 먹는 게 감정을 누르기 위한 것도 있다, 가끔은. 내겐 슬픈 감정마저도 차갑게 얼리는 그리고 마음을 부드럽게 녹이는 아이스크림과 같은 것.)
-- 얼리 때는 인지능력의 미분화로 인해 현실과 동화를 구분하지 못하지만, 일정한 나이를 넘어서면 현실을 떠나고 싶어하는 마음과 누구나 조금씩 갖고 있는 피터팬신드롬 때문에 인격은 복합적인 혼돈을 일으킨다. 그중 대다수는 잠깐의 방황 뒤 그저 그렇게 동화를 잊은 채 살아질 뿐이고, 극소수 일부는 천장에 목을 매달거나 돌아버린다. 나는 지금 대다수 가운데 하나다………
………가 아니라 나는 이미 여섯 살 때 청량리역의 인파 속에서 동화를 잃었다. 그때 점퍼 주머니 속에 무십코 손을 넣은 순간 오백원짜리 동전 네 개와, 셀로판지에 터질 듯 빵빵한 공기와 함께 싸인 빵, 겉봉에 노래방 이름이 적힌 질 나쁜 휴대용 휴지 따위의 현실이 만져졌던 거다.(21쪽)
(나는 언제 동화를 잃게 됐을까? 꿈 속에서도 엄마는 엄마로 등장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님 UFO가 나를 버리고 간 꿈을 꾸고 펑펑 운 뒤에?)
-- 어느 날은 상담실 담당인 국어선생의 특별한 배려로 방과 후 개인면담까지 진행됐다. 자꾸 나더러 마음을 열란다. 이유를 알면 극복할 수 있을 거란다. 그러나 그걸 누구에게 말할 수 있겠어. 가재는 게 편. 당신들과 똑같은 일을 하는 유능한 선생님이 있어요. 내 아버지의 아내이기도 하지요. 나는 단지 이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내가 원해서 내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 선생님에게는 그 모든 것이 문제고 건수예요. 상담이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그 선생님이에요―라고? 생각만으로도 구차한 데다 몇 다리 건너 후환마저 뒤따를 법한 이야기.
이유를 안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일도 아니고, 남은 거라곤 원인이나 치유에의 희망이 아니라 피투된 현상뿐. 그저 혓바닥과 입천장의 불필요한 마찰을 통제할 수 없는 현상. 점점 말하기를 피하는 나. 점점 말을 잃어가는 나.(36쪽)
(아이들에게 상담을 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교사니까 담임이니까 알 건 알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나도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어’라고 말하고 있진 않았을까. 누구에게 말을 해서 해결이 안 되는 문제도 있지 않은가. 그런 아이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뭘까. “어쩜 넌 그냥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야.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 이것도 작위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 저 병신 천치 같은 것, 왜 저러고 당하고 살아? 다 일러바치고 확 나와 버리면 되잖아?
그러나 그리 말하는 이들도 실은 알 거다. 이상과 철저히 거리를 둔 현실을,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이 주는 무게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최소한의 금전적인 지원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조금은 감수해야 할 여러 유형의 폭력이 있다는 체념적인 단정. 일단 닥치고 집을 나와 청소년쉼터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아마도 생명의 위협에 가까운 폭력을 피해 도망쳤거나, 견뎌본들 나중에라도 얻을 것 없는 가난한 집에 미련을 버렸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는 폭 좁은 편견. 기타 강간이나 임신 절도 등의 문제는 가난과 폭력의 별책 부록 같은 것이라고. 영악한 건지 고지식한 건지, 대학에 가면 당면한 문제 가운데 최소한 몇 가지는 해결된다는 전통적이고 막연한 중류 계층의 믿음. 남들이 밟은 대로 따라가는 길. 그리로 가려면 물질적인 조건은 가능한 한 충족될수록 유리하다. 그 길을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배선생이 비치는 적의 앞에 무릎 꿇는 셈이라 싫기도 하고. 그런 앞일을 고려해가며 행동의 폭을 결정하는 나는 머저리라기보다는 오히려 계산적이다.
언제가 됐든 떠나기 위한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는 나.
그런데 가감승제 부호 중 무엇을 잘못 눌렀는지, 계산이 어그러졌다. 어디서부터였을까.(38쪽)
(어쩌면 우리는 폭력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가정폭력이든 학교폭력이든―아이들에게 얼른 끊고 나오라고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아이만큼 상황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 도플갱어 피낭씨에
주문에 따라 이걸 먹고 잠들면 다음 날 내가 가기 싫었던 학교나 회사에 또 하나의 내가 대신 가줍니다. 맘 편히 집에 있거나 땡땡이를 치세요. 단 정말로 도플갱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보면 절대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둘을 동시에 발견하거나 둘의 눈이 마주치면 둘 중 하나가 영원히 사라져버릴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겠어요?(56쪽)
(완전 갖고 싶은 아이템. 궁금해하지 않을 자신 있는데. 혹시나 마주쳐서 사라진다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데.)
--‘긍정이나 부정, 자기가 바라던 어느 쪽의 변화든 간에 이것은 물질계와 비물질계의 질서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입니다. 따라서 모든 마법의 이용 시 그 힘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하십시오.’(56쪽)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이런 생각을 한다면 좀 더 상식이 통하는, 따뜻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 나는 지금 내게 필요한 것과 자존심 사이에서 고민했다. 누군가의 전적인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서기에는 자신감이 2프로 부족한 나이. 지구에서 가장 한심스러운 숫자 열여섯.(69쪽)
(열여섯이라는 말을 참 적절하게 표현한 문장 같다. 혼자 서지는 못하고 온전히 기대기는 싫은.)
-- 그러나 이곳의 마법사가 만드는 빵이라면 좋아질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의 빵에는, 잘못 사용하면 조금은 위험한 향신료일지 몰라도, 과거와 현재 대신 미래가 들어있기 때문이다.(99쪽)
(멋진 문장. 미래, 꿈에 대한 생각을 잃지 않는 주인공이 멋지다.)
-- 옛이야기에서와 달리 지금 사람들이 마법의 과자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건 당장의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필요보다는 대체로 추상적이고 감정적인 문제 때문. 과열된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수소를 가득 담은 풍선만큼이나 끝없이 상승할 수 있다. 감정과 풍선의 공통점은 비가시권의 높이에서 제풀에 폭발해버린다는 것.
그에 비하면 현실이란 그넷줄이나 위로 튀어오르는 공과 같이 얼마나 건조하고 절망적인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곳까지밖에 오르지 못하며, 땅이 잡아당기는 힘을 뿌리치지 못하고 다시 내려오니까.(123쪽)
(옛날 이야기에서 마법이 필요한 건 하늘을 날기 위해서라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고 싶어서. 뭐, 그런 거였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위저드 베이커리>에서처럼 감정의 문제를 어려워한다. 우리는 예전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으나―심지어 하늘도 날고 잊지 않은가―더 불행해졌다. 심지어 요즘 아이들은 감정의 분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니 마음이 무겁다.)
-- 무엇보다도 사람의 감정은 어째서, 뜨거운 물에 닿은 소금처럼 녹아 사라질 수 없는 걸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치 통조림만도 못한 주제에.
그러다 문득 소금이란 다만 녹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어떤 강제와 분리가 없다면 언제고 언제까지고 그 안에서.(163쪽)
(다친 감정을 어루만져 주는 일, 중요하다. 그보다 다른 이들에게 상처주지 않는 것은 더 중요하다.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 언제나 옳은 답지만 고르면서 살아온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은 인생에서 한 번도 잘못된 선택을 한 적이 없나요? / 틀린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게 아니야.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라는 뜻이지. 그 선택의 결과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너의 선택은 더욱 돌이킬 수 없는 방향을 나아갈 거란 말을 하는 거야.(176쪽)
(우리는 어떤 일이 잘못됐을 때 상황을 탓하거나 주변 사람을 탓한다. 결국 선택은 내가 한 것인데도 말이다.)
-- 그때 통제할 수 없이 눈물이 한 줄기 흘렀다. 이 눈물의 이유는 뭘까? 어쩌면 나는 오래전에 내 옆에 있었던 무언가를 잊어버린 채 살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무얼 잊어버리거나 놓고 온 걸까. 그 애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어느 평행우주 속에 살고 있어서 나와 깊은 관계를 맺었던 아이일까. 그 애뿐 아니라, 지금껏 내가 선택해오지 않았거나 거부해온 모든 요소와 사람들이.(205쪽)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나비효과처럼 어느 누군가의 어떤 행동 하나 때문에 내가 이만큼의 행복을 누리고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를 또 힘들거나 불행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잘 살아야겠다. 세상에는 어쩌면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어주는 마법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 머릿속에서 이성의 목소리가 내게 말을 건넨다. 추억은 그대로 상자 속에 박제된 채 남겨두는 편이 좋아. 그 상자는 곰팡이나 먼지와 함께, 습기를 가득 머금고서 뚜껑도 열지 않은 채 언젠가는 버려져야만 하지. 환상은 환상으로 끝났을 때 가치 있는 법이야. 한때의 상처를 의탁했던 장소를 굳이 되짚어가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아. 아직도 어린 시절의 마법 따위를 믿는 녀석은 어른이 될 수 없다고.
그러나 나는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더욱 빨리 달린다. 추억이라니. 환상이라니. 그 모든 것은 내게 있어서는 줄곧 현재였으며 현실이었다. 마법이라는 것 또한 언제나 선택의 문제였을 뿐 꿈속의 망중한이 아니었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간판이 멀리서부터 보였다. 이렇게 달리니 꼭 언젠가 그날 같아서 웃음이 난다. 그러나 그때는 나를 붙드는 현실에서 격렬히 도망치다가 그곳에 다다랐을 뿐이다.
지금은 나의 과거와, 현재와, 어쩌면 올 수도 있는 미래를 향해 달린다.(218쪽)
(환상에 빠지면 현실을 잃게 된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현실을 이어나가게 하는 힘은 환상, 꿈에서 나오지 않는가. 과거에만 몰두해있는 고여있는 환상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환상이라면 얼마든지 꿈꾸어야 한다. 하늘을 날게 되고 달에 가게 된 것도 인간의 헛된 꿈이 만들어낸 기적이니까.)
3. 수준 및 상황
<수준>
중학교 2학년부터
<상황>
- 평소에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화)이 자주 난다.
- 남이 알지 못하는 안 좋은 사건을 당한 기억으로 괴롭다.
- 내가 하찮게 여겨진다.(자신이 없다.)
- 죽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 현실보다 다른 세상이 더 편하다.(인터넷 채팅, 게임, 환타지, 꿈, 책이나 소설 쓰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