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말하다/한겨레21, 씨네21, 팝툰

한겨레21, 773호 제주의 MB <만리재에서> 역지사지 中

비단구두 2009. 8. 29. 22:41

역지사지는 어쩌면 세상의 온갖 갈등을 풀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원칙일지도 모른다. 곤경에 처한 사람의 처지가 된다면야 극적인 타협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터. 공자가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고 한 것이나, 예수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한 것도 다 한가지 뜻이다. 그러니 황금률이라 하지 않나.

“약 2천년 전 가야국 시절, 인도의 한 공주가 우리나라에 와서 황후로 살았다는 소설이 전 주한 인도대사의 집필로 나온 적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 중에 거의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걸 발견했다. 8월7일 청와대에서 아난드 샤르마 인도 통상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우리나라와 인도의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체결 과정의 노고를 치하하며 한 말씀이란다. “이번 CEPA 체결은 경제뿐 아니라 문화·인적 교류등 양국간 전반적 관계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이 이런 관례적 치하에 앞서 빠뜨리지 않았어야 할 말이 있다. 그 옛날 우리나라에 공주를 보낸 나라 인도에서 온 보노짓 후세인(성공회대 연구교수)이 대한민국 수도의 버스 안에서 겪어야 했던 참담한 인종차별(‘줌인’ 기사 참조)에 대한 사과다. 이 대통령이 “이번 협정 체결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더욱 가까워질 것으로 기대”한다면, “현재 150억 달러대인 교역규모가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면 더욱 그렇다.

인종차별은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 출신의 백인’을 제외하고는 전세계 어떤 나라의 어떤 인종 사람이든 쉽게 역지사지해볼 수 있는 문제다. 언제 어디서나 한 번쯤은 당해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도 요즘 보편화한 해외여행·연수를 다녀온 이라면 작게든 크게든 겪어본 인종차별 경험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 비인간적인 불쾌함을 알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그를 극복하기 위한 역지사지는 보노짓 후세인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벌써부터 내부적으로 차별이 일상화하고 역지사지가 사문화한 공간이다. 용산 참사나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목격된 가혹한 진압도 그들이 철거민이거나 노동자였기에 감행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아무리 법 집행을 한다고 해도 다 똑같이 짐승 취급하며 때리고 짓밟고 사지로 몰지는 않는다. 심지어 청문회장에 나타나는 어떤 이들은 불법이 드러나도 처벌조차 받지 않는다. 각종 정책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쉽게 무시되는 걸 보면, 정부가 여론을 청취하고 정책을 구사할 때도 국민 모두를 똑같이 대우하지 않는다. 아마도 가까운 이들의 조언만 먹히는 모양이다.

이렇게 역지사지는 간 데 없고 “우리가 남이가?”만 남는다면, 대한민국에 서로 다른 두 인종이 생겨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용산 참사로 말하자면 죽은 자와 죽인 자요, 쌍용차 사태로 말하자면 공장 안에 있는 자와 밖에 있는 자요, 고용 문제로 말하자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요, 뭉뚱그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다. 그들 사이에 차별이 자리잡으니, 한쪽은 보노짓이요, 한쪽은 그에게 욕설을 퍼부은 ‘양복 사내’다. 한쪽은 친절한 ‘레이디’요, 다른 한쪽은 퉁명스럽고 인상 안 좋은 ‘몬스터’다. H.G. 웰스의 <타임머신>이 그린 미래는 너무 가혹한 알레고리다. 그러니 제발, 기소불욕 물시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