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말하다/한겨레21, 씨네21, 팝툰

한겨레21 783호 - 만리재에서 <신이 낸 가장 어려운 문제>

비단구두 2010. 6. 16. 21:50

대한민국 부모들은 자녀가 그럴듯한 대학을 나와 그럴듯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사달이라도 날 듯 안달복달한다. 국제중·특목고·사교육 바람의 진원지도 바로 그 부모의 가슴 한복판이다.

그런데, 사실이 그렇다. 그럴듯한 대학을 나와 그럴듯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실제로 사달이 난다. <한겨레21>이 ‘노동 OTL’ 시리즈를 통해 매회 확인하고 있는(이번주는 지면 사정상 ‘노동 OTL’을 한 회 쉰다) 바로 그 현실이다. 비정규 빈곤노동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 인생 역전은 이루기 힘든 꿈이 된다. 어쩌면 자식이 그런 처지로 몰릴 수도 있다는 공포가 이 시대 부모들의 심장을 벌떡거리게 하는 게 아닐까. 어떻게 하면 등수로 계급을 갈라서 한쪽에는 특혜의 삶을, 다른 쪽에는 고통의 삶을 안겨줄 것인지만 줄기차게 연구하는 듯한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 거기에 중독된 부모들의 자식 사랑법은 외길이다.

교육 문제는 이렇게 사회체제 전반과 연결된다. 이제 자녀를 둔 부모라면 당장의 교육 문제 해결과 함께 이 비뚤어진 사회체제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제도로 강요되는 불행을 겪지 않을 수 있는,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아마도 가장 효과적인 교육 문제 해결책이 될 것이다.

특목고니 자율형 사립고니 하면서 끊임없이 서열화를 시도하는 근거 논리인 수월성 교육도 그렇다. 지금처럼 생존경쟁의 일환으로 공부를 해야 하고 그 성취를 획일화한 입시로 평가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창의력과 진취성을 키울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그렇게 자라난 엘리트가 공동체를 위해 어떤 기여를 할까? 사회에 진출해서도 학창 시절에 몸에 밴 경쟁의 습관에 지배받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지금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이른바 엘리트라는 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하나의 반면교사가 된다. 또 수월성 교육의 수혜자들이 대개 한정된 직업군, 특히 부와 권력이 쉽게 보장되는 직업군으로만 몰리는 현상도 오래된 사회문제다.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키워내지 못하는 수월성 교육은 그저 탐욕의 경기장일 뿐이요, 나라 전체의 고른 발전에는 오히려 해가 될 뿐이다.

인재를 키우기 위한 별도의 교육이 필요하다면, 선발과 양성 과정에서 인성을 중시하고 공동체를 위한 헌신을 몸에 배게 하는 방식이 돼야 할 것이다. 또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음지에서 꿋꿋이 일하는 천재들을 양성하는 과정이 돼야 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비록 자신의 자녀가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한 부모들이라도 박수를 치며 응원하지 않을까.

이와 관련해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한 영국 케임브리지대 앨리슨 리처드 총장의 말이 인상적이다. “학생들의 학력뿐 아니라 인성·잠재력·사회성을 보며 신입생을 뽑는 게 우리의 입시정책이다.” 이를 위해 지원자 개개인을 심층 인터뷰한다고 한다. 또 저소득층 학생들이 더 많이 케임브리지대에 들어올 수 있도록 여름방학 때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캠프를 마련한다고 한다. 지역 균형선발을 통해 들어온 서울대 학생들이 점수 경쟁으로만 들어온 학생들보다 졸업 학점이 높다는 최근의 발표 내용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교육 문제는 신이 인간에게 내준 가장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 한다. 4800만 가지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사회 전반의 개혁과 맞물려 있으며, 무엇보다 이기심이나 탐욕 등 인간 내면의 충동과 연관돼 있다. 이 복잡한 실타래를 푸는 건 교육 전문가들의 과제이자 우리 모두가 한 줌씩이라도 지혜를 보태야 할 숙제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지금과 같은 약육강식의 정글 사회를 그대로 놓아두고는 교육 문제는 영원히 쳇바퀴를 돌 뿐이란 점이다.

<한겨레21>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