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여학생
2009.08.12. 연수후기
비단구두
2009. 8. 15. 00:51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라는 그 노래처럼 혼자서 객석에 남겨진 느낌이에요.
어제까지 3일 정도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내다가도, 자려고 누우면 앙상블들의 노래가 들려오고, 어디선가 진경샘이랑 주희언니의 목소리도 들리고, 우리 모둠샘들의 몸짓도 하나하나 되살아나서요. 이미 끝나버린 연극을 혼자 보내지 못하고 있는 듯한.
맨 처음 했던 이야기처럼, 강사라는 무거운 이름을 달고 가는 게 참 부담이었어요. 이번 연수는. 진경샘처럼 대본 과정안을 계속해서 고민해 온 사람도 아니고, 주희언니처럼 여러번의 연수 경험과 전공적인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남들보다 연수 쪼끔 더 온 거 뿐. 그래서 한편으론 아무렇잖게 뛰어들어 놀 수 있는 연수생도 어려웠고요. 몇차례 왔더니 맘껏 놀 수 있는 게 아니라 자꾸 주춤하게 되고.. 그래서.. 기록만 하면 돼, 기록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연수였는데..
우리 모둠 샘들 노는 거 보면서 참, 좋아 보이고.. 나도 그냥 대본모둠 연수생였으면 좋았겠다 싶기도 했더랬어요. 기록만 하면 돼, 하다가 기록만 하고 있게 되면 그래서 혼자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이중적인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슬금슬금 "안 들려요, 크게 말해주세요!"하면서 샘들 사이로 파고 든 건지도. ㅎㅎ. O트리플A형이거든요.(무늬만 O형) 다가간 거리만큼 마음도 편해지고 보는 걸 즐기게 되고, 샘들 노는 데 마음이 동해서 자꾸 칭찬을 늘어놓게 되고.. 그런 거였어요 사실. 첫날이랑 둘쨋날 오전까진 몇마디 말도 없었던 거 탐색 중, 로딩 중였다는 거. ㅋ
그리곤 하루하루 마음 열어가는 샘들 보면서 그냥 같이 좋았어요. 사람들 사이에 길이 생기기 시작하고, 우리가 살고 있던 공간이 행복한 소리들로 채워지는, 그런 아름다운 마법을 보는 게 참, 좋았거든요.
드디어 공연날은 각자의 공간에서 마음껏 움직이면서 공간을 꽉 채우는 앙상블, 그 화음 자체였지요. 그리고 뒤늦게서야 뒤풀이 자리에서 샘들이 제 칭찬에 연수 동안 더 즐겁게 움직일 수 있었다는 말을 듣고서야 알았어요. 저도 그 화음을 이루고 있던 하나의 음표였다는 것을. 저 그 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다시 사람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무대의 기쁨을 느끼게 해 준 대본모둠 샘들, 복받으실 거에요~~ 제가 은총을 받은 만큼.^^ 오늘밤에도 꿈을 여는 앙상블을 계속하실 건가요?
나이팅게일 경화샘, 힘든 몸 때문에 사람들과 섞인 시간이 적어서 걱정했는데 나이팅게일로 멋지게 귀환. 그리고 무대에서 얼마나 환히 웃었는지 모르죠? 예뻤어요, 그 함박웃음.
안타까운 경희샘, 먼저 가셔서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짧았어요. 다음 연수 때는 몸 만들어서 오세요.^^
화려한 말솜씨의 앙상블장, 종호샘, 농담과 진담 사이의 오묘한 비율을 가늠키 어려운 샘의 놀라운 언어의 세계를 한동안 끊어야겠네요. 그리고 애교섞인 “겨~~” 그리울 거에요.
환한 달님 현정샘, 언제나 반달일 것 같은 눈웃음이 샘의 최대 무기에요. 근데, 거울할 때는 정말 웃는 게 더 무서웠던 거 알죠?^^ 달님, 목소리도 멋졌어요!
인자한 미소의 시종장 순천샘, 소년같은 천진한 눈매와 다른 육감적인 다리! 저희는 황소를 포기할 수 없었어요.ㅠ 근데 젤 멋진 건, 주변을 참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목소리라는 거.
6개월이나 된 무서운 신규 정아샘, 당차고 또박또박한 솔! 음의 말투, 장미꽃을 입에 문 뇌쇄적인 눈빛, 근데 가장 예뻤던 건 그 하얗던 무릎에 여기저기 들어있던 멍자국.
호두까기 인형같은 귀여운 청년 성용샘, 시종장 안 하게 됐을 때 청년을 하게 돼서 기쁘다고 말했던 거 진심이었을 듯. 청년, 정말 잘 어울렸어요. 인형같은 움직임도. 가와이~를 외치고 싶었던.
실제로도 숲속에 살 것 같은 판타스틱 여종샘, 그냥 샘이 참 풀잎같은 느낌이 나서 판타스틱에 어울린다고 생각은 했지만 놀라운 열정과 순수까지 다 끌어내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반딧불 반짝이는 손동작은 정말 판타스틱이었어요.
우리 울보쟁이 공주님 수정, 차가운 시선으로 걷는 공주같은 도도함이 참 인판타와 어울린다 생각했는데 여리고 조심스럽고 예쁜 구석이 더 많은 수정. 빨간 망토와 철사로 만든 드레스는 수정밖에 안 어울려.^^
다이아몬드 아가씨 유경, 몸치라면서 아름답게 피는 꽃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자랑하며 눈 깜빡이는 아가씨를 완벽히 소화해 낸 센스쟁이. 유경이 만든 나나나~ 앙상블송 덕에 다들 무대에서 놀 수 있었던 거 알지?
어설픈 앙상블에서 멋진 왕으로의 변신 현록샘, 누가 그랬죠? 하루에 딱 하나씩 늘어간다고. 처음과 달리 무대에서 어찌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던지 놀랐어요.^^ 연수 안 온다고 하지 말고, 다음엔 아크로바틱한 몸을 더 움직여 볼 생각 없어요?
목선부터 발끝선까지 살아있는 주희샘, “체신머리 없이!” 라는 말이 아직도. ㅋㅋ 언니의 강도 높은 훈련 덕에 다들 몸이 숨쉬는 연기를 할 수 있었던 듯. 제주에선 이것저것 다 놓아버리고 즐겁게 쉬고, 다음번에 볼 땐 언니의 짜장짬뽕에 긍정적 변화가 있길.^^
대본모둠의 앙상블을 이루어낸 멋진 지휘자 진경샘, 왜 대본모둠은 와도와도 지겹지 않은 거죠?! 왜냐구욧!! 진경샘 북소리 정말 부러웠어요. 다음엔 나도 배울테야. 그리고, 뭣보다도 인생상담 해 주고 토닥여주신 거 또 살아가는 힘이 될 거에요. 또 봐요, 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