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잠보! 아프리카

2010.01.10.~11. 아픔을 간직한 진주 잔지바르, 스톤타운

비단구두 2010. 2. 19. 00:52

  어젯밤에 늦게 잤는데 일찍 눈이 떠졌다. 핸드폰 문자가 보내지길래 연락을 했는데 범다영이에게 문자가 와 있다. 오~ 출발이 좋은데? 오늘은 드디어 잔지바르로 가는 날! 스톤타운과 잔지바르의 화려한 색채가 마음을 들뜨게 한다. 3일치 짐을 꾸려서 배에 올랐다. 아프리카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우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 사람들은 우리를 구경하고.ㅎ 레게머리를 한 아이, 헤나를 한 여인, 히잡과 차도르를 쓴 사람들. 그리고 아랍쪽의 얼굴이 섞인 검은 피부의 사람들. 이런 풍경을 보면서 아프리카와 아랍이 만났던 잔지바르로 가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컨디션은 메롱.


  잔지바르 도착이다. 돌로 된 건물들, 처음보는 해안시장, 바다냄새. 다른 느낌이 좋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잔지바르의 3일은 자유다. 트럭투어가 아닌 우리가 정한 여행루트와 숙소, 식사. 새로운 여행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다. 일단은 늦게 도착해서 대강 들어간 집. 흩어져 먹으려 했으나 예뚜 식구들이 다 같이 먹기로 찬성. 우리는 너무 하나다.ㅋㅋ 참치와 볶음밥을 시켰는데 스파이시는 안 된단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참치가 완전 질겼다. 암튼 열심히 밥을 먹고 남지와 까무와 방에서 할래할래 쉬었다. 그런데 밖에서 들려오는 포크레인으로 땅을 뚫는 듯한 소리. 그러고보니 이 동네 도착해서부터 계속 들리는 소리다. 잘 사는 동네라 집집마다 공사를 하나 했더니, 집집마다 발전기 모터 도는 소리린다. 트럭투어만 하던 우리라 잠시 잊었던 아프리카의 현실. 전기가 귀하다는. 이렇게 해서 해질녘까지 전기를 쓰고 밤이면 뚝 끊긴단다. 



  자유여행의 기치와는 달리 또다시 모두가 함께 하기로 한 1일 투어에 참여했다. 오늘의 투어는 역사&향신료 투어. 달라달라를 타고 잔지바를 한 바퀴 도는 코스란다. 먼저는 잔지바르의 가장 큰 노예시장이었던 성공회 교회에 들렀다. 교회 건물이 크고 웅장하면서도 자연에 있는 것처럼 멋졌는데 그 안으로 들어서자 현지인은 아무도 없고 관광객들 뿐..ㅜ 리빙스턴 박사의 탄원으로 노예시장이 문을 닫기까지 엄청나게 번성했다는 이 곳. 수많은 노예들의 피가 뿌려진 곳이다. 노예들을 때려서 울지 않는 노예는 더 비싼 값을 메기고 여자들은 생산능력에 따라 돈을 더 쳐주었다고 한다. 건물 밖으로 나가자 당시 노예시장을 옮겨 놓은 듯한 동상을 보게 됐다. 쇠사슬을 목에 묶고 짐승처럼 취급받고 값매겨졌던. 보통 7년밖에 살지 못할 만큼 몸도 마음도 삶의 의지가 꺾여버린 이들의 영혼이 느껴졌다.
  자신들을 노예로 만들었던 이들이 믿었던 종교를 받아들여 그 아픔을 치유하고 다시 살기 위해 믿음을 가졌던 이들. 스페인 여행 중에도 느꼈지만 종교가 아픔을 치유한다는 것은 꾸며진 건지도 모른다. 힘든 사람들이 극한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 신기루처럼 만들어낸 것, 현실을 이기기 위해 믿는 종교가 전파한 이들에게 문화까지도 복종하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그런데도 다시 살고, 남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색깔로 녹여내는 그들이 더 놀랍기도 하고. 암튼 마음이 복잡해지는 순간이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향신료 농장. 생전 처음 보는 아말감 맛이 나는 향신료와 뿌리부터 확 끼쳐오는 진한 향에 금세 노란물을 들이는 생강. 그리고 열매에서 샛주홍을 뽑아내 여자들의 연지로 쓰였다는 염료, 나무가 다 마른 뒤에서 진한 향을 뿜어내는 계피, 평함한 풀처럼 보이는데 조금만 비벼도 향을 피워내는 레몬그라스, 처음엔 풀색이었다가 익을수록 검정이 되는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인 후추, 그리고 패션 푸르츠부터 처음 맛보는 이름모를 과일들.
 

  저녁이 되어 야시장이 열린다는 말을 듣고 허기졌던 우리는 구경을 나갔다. 잔지바 피자와 사탕수수 주스는 정말 맛이 최고!!
  그리고 우연히 만난 하림의 팬 덕에 하림이랑 둘이 듀엣으로 아프리카 노래를 할 기회가 왔다는..ㅋㅋ 행복한 밤이다. 그러나 승달이의 담배부터 어색한 장면을 보게 되는 바람에 뭔가 불편해지는 밤이 되어버렸다.



  다음날.
  오늘은 까무와 남지와 한 방에서 눈을 떴다. 늦게 일어나도 된다는 말에 슬근슬근 일어나 아침내 수다를 덜다가 아침식사도 늦었다.ㅋ 토스트와 계란, 홍차로 아침을 먹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유네스코 문화유산, 스톤타운을 구경하러 나섰다. 함께 한 식구들은 남지, 까무, 유이, 여몽, 어딘. 여섯 여자가 유이를 필두로 작은 지도 하나에 의존해서 스톤타운 골목골목을 쏘다녔다. 지금까지의 아프리카에서 보기 힘든 풍경들에 내 눈이 즐거워진다. 더욱이 이런 골목길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더욱. 돌바닥, 좁디좁은 골목에 즐비한 상점들, 어디선가 풍겨오는 수수께기같은 냄새들, 숨바꼭질하듯 골목 여기저기서 내미는 아랍 또는 아프리카의 얼굴들. 나도 그들과 함께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
  그 골목의 한 상점에서 우리는 단체로 스카프를 샀다. 유이와 여몽은 세트같은 치마도 샀는데 유이가 그 집에 옷을 두고 와 돌아갔더니 그 때가 이슬람 기도시간이었다. 덕분에 골목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아 주인을 기다리는데 조용히 그 시간 속에 앉아 있는 기분. 기도시간이라 여기저기 동시에 갑자기 문을 닫은 상점들 사이에 가만 앉아 있으니 그냥 편안하다. 남지의 그림 그리는 풍경과 조곤조곤 들려오는 우리들의 목소리만 허공에 머문다.








  옷을 찾아들고 다시 스톤타운 돌기 시작! 그러나 잘못 먹은 비타민 때문에 내 컨디션은 더 엉망이 되어갔다. 지칠 대로 지쳐서 배도 고파서 찾은 멋진 레스토랑이 화장실은 엉망. 암튼, 숙소로 돌아와 조용히 쉬었다.

  오후에는 북부로 이동이다. 거기 바다가 예뻐서 액티비티를 하기가 좋단다. 도착은 저녁이 다 돼서야 했는데 사방이 캄캄. 여기는 발전기 소리가 안 나서 좋다 했더니 반대로 완전히 밤이 되어야만 전기가 들어온단다. 게다가 물도 쫄쫄이다. 물도 전기도 서양 관광객들 좋으라고 한데 모아놓은 캠핑장과는 영 다르다. 아프리카 속으로 한 발 더 들어온 느낌. 그나마도 여행지인 잔지바르고 잘 사는 동네인데도 이렇다. 돈 내고 왔는데 숙소가 어떻게 투덜댔던 며칠 전의 내가 그 속좁음과 편견이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저녁이 돼서 피자와 맥주를 시켜 먹었다. 와우, 식사는 최고. 맛있다! 그런데 차디찬 맥주를 밤마다 먹어서인지 속이 좀 이상했다. 그렇잖아도 컨디션도 아닌데 얼른 밥을 먹고 숙소로 먼저 돌아왔다. 여몽과 함께 랜턴을 켜고 어둠 속을 걸어서. 그런데 오마갓.. 방향치인 내가 처음 온 곳을 그것도 깜깜하기만 했던 숙소를, 지금도 깜깜한 속에서 어떻게 찾겠냐고요. 결국 숙소 키 보여주면서 다른 숙소에 들어가 묻고 물어서, 지나가던 마사이 청년의 도움을 받아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밤까지도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