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잠보! 아프리카
2010.01.15~16. 진짜 아프리카를 만나다 - 말라위, 가롱가마을
비단구두
2010. 2. 19. 11:17
새벽기상 4시 반. 오늘은 이상하게도 텐트가 말을 듣지 않았다. 제대로 접어지지 않아 고생, 거기다 쇠막대가 빠지지 않아 결국엔 트럭에 그냥 실었다는. 드디어 탄자니아를 떠나 말라위의 루스빌로로 가는 날이다. 한참을 달리는 동안 어제 우리의 메뚜기 안에는 어제 이슬 맞은 젖은 빨래들이 잔뜩 걸리고 나도 오늘은 배낭을 빨랫대 삼아 얇은 남방 안으로 속옷을 말리며 갔다. 이링가가 고산지역이라더니 새벽부터 아침까지 반팔티+집업+바람막이+기모바지를 입고도 맨발이 춥다. 운동화 어딨어.ㅠㅠ 그런데 탄자니아와 말라위 국경 근처로 가면서 날이 급격히 더워지기 시작한다.
점심을 복숭아+옥수수1/5쪽+샐러드로 때우고 국경으로 향했다. 말라위 국경! 처음으로 걸어서 국경을 건넌다. 지나는 아이들에게 손도 흔들면서 씩씩하게. 예전 캄보디아 국경을 넘을 때완 달리 1달러를 외치는 아이들이 없어서 좋다. 그렇지만 대놓고 비자피로 100달러를 받는 무지무지 비싼 곳이 아닌가. 이런, 오메, 말라위는 비자피만 비싼 게 아니라 시간도 엄청 잡아 먹었다. 무슨 국경통과가 그리 어렵다고 도장을 안 찍어주는 거다. 국경 통과시키는 공무원놈 눈빛도 저질이고. 그리고 국경 검문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Stop The AIDS라는 커다란 포스터. 말라위가 동아프리카에서도 가장 많은 아이들이 에이즈로 죽어가는 고통의 땅이라더니, 그 문턱에 들어선 게 확 실감이 난다. 에이즈가 아무렇지않게 퍼져 있는 이 땅에 우리가 만날 가롱가 루스빌로 고아원의 아이들이 있다.
가롱가에 입성. 멋진 캠프장을 찾았으나 운영을 안 한단다. 그래서 루스빌로부터 일단 둘러보기로 했는데.. 허걱, 엄청난 숫자의 아이들이 아프리카 소울이 강한 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우리를 맞는 게 아닌가. 버스라도 들어올릴 기세로. 그 아이들의 기에 눌려 잠시 멈칫 했지만 우리도 우리의 주제곡 <잠보 아프리카>로 응수했다.ㅎ
그리고 선교사님이 아이들과 함께 우리가 묵을 곳을 다 치워놓으셨다고 하셔서 그냥 신세를 지기로 했다. 5일 전에 지진이 크게 있어서 다른 건물은 무너지고 금이 갔는데 온전히 서 있는 건물 한 채를 우리가 쓰기로 한 거다. 우리나라 푸세식 화장실보다 구멍도 적게 뚫린 화장실에 한 사람 몸 뉘일 공간 밖에 없지만 하루이틀, 루스빌로에서 지내기로 했다. 기왕 아이들과 부대끼기로 한 거.
진형근 선교사님은 2년 전에 아무것도 없이 영어도 모르는 채로 오로지 농업과 선교활동에 대한 꿈만 가지고 이곳에 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사모님도 너무 좋으신 분. 가롱가의 순박하고 긍정적인 사람들을 사랑하고 종교적인 믿음과 특유의 낙천성으로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아니 즐기는 두 분을 보면서 진정한 행복에 대해 생각했다.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큰 정신적인 기쁨으로 산다는 분들. 우리는 우리 손 안에 있는 것들을 틀어쥐고 사는 것 같다. 그러고도 더 많은 것을 쥐려고만 하고. 정신적인 행복은 그동안에 손가락 틈으로 다 새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다음날.
루스빌로의 아침. 좁은 모기장과 매트, 내 몸 하나를 뉘일 수 있는 공간만 있어도 참 좋다는 느낌이 든다. 닭과 한 방에서 자더라도.ㅋ 닭소리로 시작하는 아침도 오랜만이고.
느지막히 일어났지만 오늘 아이들과 한 연극놀이 때문에 고민이 많다. 공책에 순서를 쓰고, 뭐라고 말을 할까 그려도 보고, 다행히 어딘이 있으니 통역은 걱정 안 해도 되고, 뭐 어차피 몇 마디 안 할 거니까.. 몸으로 하면 되는 거고.
밥을 먹고 유스센터로 이동해서 연극놀이 할 장소를 물색하는 동안, 소심한 성격 때문에 아이들을 어떻게 모을까 고민만 하는 동안 10시가 되었다. 놀랍게도 그동안 여몽은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그 동네 아이들이 매일 지나는 길에 봐 왔을 꽃과 나무를 느끼고 만지게 하고 놀게 하고 있었다. 놀라운 여몽. 숲해설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여몽의 그런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부럽다.
또 다시 그러는 사이에 엠프가 설치되고 갑작스레 공연이 시작됐다. 원초적으로 남녀가 무릎을 부딪치고 골반을 돌리는 춤 사이에 아프리카 특유의 하울링이 강한 노래들이 섞이면서 아프리카만의 몸짓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놀라운 실력의 아크로바틱까지. '이 사람들은 정말 몸으로 이야기를 하는구나'가 팍팍 전해오는 순간이었다. 마임 같은 건 배우지 않아도 섬세하게, 멋지게, 열정적으로 뿜어낼 자연스런 몸짓, 그 속의 흥.
그러다 12시가 되고 공연이 그대로 두면 그치지 않을 것 같아 하림의 중재로 우리의 문화교실을 열게 됐다. 남지의 목공예, 유이의 보자기로 가방 만들기, 하림의 기타교실, 용의 축구교실, 그리고 연극놀이.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리쬐는 볕 때문에 연극놀이는 접어야했다. 한편으론 맘이 편하기도 했지만 서운하기도.ㅠㅜ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유이의 종이접기와 보자기교실에 참여. 아이들과 어른들과 함께 어울려 뭔가를 만들면서 즐거워졌다. 가위를 달라고 서로 달려들고 예쁜 색종이를 서로 집으려 하고 자기 종이접기를 보아달라 너무 강하게 밀착해오는 아이들이 살짝 무섭기도 했지만.ㅋ
중간에 카메라를 꺼내 아이들과 종이접기 하는 것, 보자기 가방 만드는 것을 찍으려 했는데 갑자기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통 아프리카 사람들은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던데 여기 사람들은 참 사람과의 접촉이 적어서인지 순수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표현하기를 좋아해서인지 카메라를 즐긴다. 처음엔 친구들과 찍어달라더니 나중엔 독사진까지.. "Stop"이라고 내뱉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쨌든 무사히 교실은 끝이 나고 점심 먹고 쉬면서 오후에 있을 본공연 연습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진도아리랑을 부르게 되었는데 루스빌로 아이들이 따라 부르면서 우리가 그들의 <I wish I forget you>를 따라 하게 되고 무대에서도 합동공연을 하기로 약속했다.
오후에는 교회에서 마을잔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전문사회자의 진행으로 여는 시, 에드워드의 멋진 노래, "유스빌로~"로 끝나는 리드미컬한 힙합, 삼각관계를 다룬 연극.. 암튼 무지 다양한 공연을 보게 됐다. 우리는 하림의 <내사랑 내곁에>를 시작으로 진도아리랑, <해지는 아프리카>, <잠보 아프리카>, <아리랑>까지 이어지는 공연을 했다. 아리랑을 부를 때 가롱가 사람들이 함께 불러준 목소리, 소피아님의 눈물이 우리를 찡하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하루에 한 끼밖에 못 먹는다는 그 사람들이 끊임없이 웃고 노래하고 심지어 쉬는 동안에도 의자에 앉은 채로 몸을 들썩들썩하는 흥이 베어있는 몸이었다. 궁핍한 삶에도 끓어오르는 웃음을 짓는 그들, 우리 선조들의 흥과 많이 닮았다. 그래서 아리랑을 좋아했던 걸까?
점심을 복숭아+옥수수1/5쪽+샐러드로 때우고 국경으로 향했다. 말라위 국경! 처음으로 걸어서 국경을 건넌다. 지나는 아이들에게 손도 흔들면서 씩씩하게. 예전 캄보디아 국경을 넘을 때완 달리 1달러를 외치는 아이들이 없어서 좋다. 그렇지만 대놓고 비자피로 100달러를 받는 무지무지 비싼 곳이 아닌가. 이런, 오메, 말라위는 비자피만 비싼 게 아니라 시간도 엄청 잡아 먹었다. 무슨 국경통과가 그리 어렵다고 도장을 안 찍어주는 거다. 국경 통과시키는 공무원놈 눈빛도 저질이고. 그리고 국경 검문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Stop The AIDS라는 커다란 포스터. 말라위가 동아프리카에서도 가장 많은 아이들이 에이즈로 죽어가는 고통의 땅이라더니, 그 문턱에 들어선 게 확 실감이 난다. 에이즈가 아무렇지않게 퍼져 있는 이 땅에 우리가 만날 가롱가 루스빌로 고아원의 아이들이 있다.
가롱가에 입성. 멋진 캠프장을 찾았으나 운영을 안 한단다. 그래서 루스빌로부터 일단 둘러보기로 했는데.. 허걱, 엄청난 숫자의 아이들이 아프리카 소울이 강한 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우리를 맞는 게 아닌가. 버스라도 들어올릴 기세로. 그 아이들의 기에 눌려 잠시 멈칫 했지만 우리도 우리의 주제곡 <잠보 아프리카>로 응수했다.ㅎ
그리고 선교사님이 아이들과 함께 우리가 묵을 곳을 다 치워놓으셨다고 하셔서 그냥 신세를 지기로 했다. 5일 전에 지진이 크게 있어서 다른 건물은 무너지고 금이 갔는데 온전히 서 있는 건물 한 채를 우리가 쓰기로 한 거다. 우리나라 푸세식 화장실보다 구멍도 적게 뚫린 화장실에 한 사람 몸 뉘일 공간 밖에 없지만 하루이틀, 루스빌로에서 지내기로 했다. 기왕 아이들과 부대끼기로 한 거.
진형근 선교사님은 2년 전에 아무것도 없이 영어도 모르는 채로 오로지 농업과 선교활동에 대한 꿈만 가지고 이곳에 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사모님도 너무 좋으신 분. 가롱가의 순박하고 긍정적인 사람들을 사랑하고 종교적인 믿음과 특유의 낙천성으로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아니 즐기는 두 분을 보면서 진정한 행복에 대해 생각했다.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큰 정신적인 기쁨으로 산다는 분들. 우리는 우리 손 안에 있는 것들을 틀어쥐고 사는 것 같다. 그러고도 더 많은 것을 쥐려고만 하고. 정신적인 행복은 그동안에 손가락 틈으로 다 새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다음날.
루스빌로의 아침. 좁은 모기장과 매트, 내 몸 하나를 뉘일 수 있는 공간만 있어도 참 좋다는 느낌이 든다. 닭과 한 방에서 자더라도.ㅋ 닭소리로 시작하는 아침도 오랜만이고.
느지막히 일어났지만 오늘 아이들과 한 연극놀이 때문에 고민이 많다. 공책에 순서를 쓰고, 뭐라고 말을 할까 그려도 보고, 다행히 어딘이 있으니 통역은 걱정 안 해도 되고, 뭐 어차피 몇 마디 안 할 거니까.. 몸으로 하면 되는 거고.
밥을 먹고 유스센터로 이동해서 연극놀이 할 장소를 물색하는 동안, 소심한 성격 때문에 아이들을 어떻게 모을까 고민만 하는 동안 10시가 되었다. 놀랍게도 그동안 여몽은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그 동네 아이들이 매일 지나는 길에 봐 왔을 꽃과 나무를 느끼고 만지게 하고 놀게 하고 있었다. 놀라운 여몽. 숲해설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여몽의 그런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부럽다.
또 다시 그러는 사이에 엠프가 설치되고 갑작스레 공연이 시작됐다. 원초적으로 남녀가 무릎을 부딪치고 골반을 돌리는 춤 사이에 아프리카 특유의 하울링이 강한 노래들이 섞이면서 아프리카만의 몸짓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놀라운 실력의 아크로바틱까지. '이 사람들은 정말 몸으로 이야기를 하는구나'가 팍팍 전해오는 순간이었다. 마임 같은 건 배우지 않아도 섬세하게, 멋지게, 열정적으로 뿜어낼 자연스런 몸짓, 그 속의 흥.
그러다 12시가 되고 공연이 그대로 두면 그치지 않을 것 같아 하림의 중재로 우리의 문화교실을 열게 됐다. 남지의 목공예, 유이의 보자기로 가방 만들기, 하림의 기타교실, 용의 축구교실, 그리고 연극놀이.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리쬐는 볕 때문에 연극놀이는 접어야했다. 한편으론 맘이 편하기도 했지만 서운하기도.ㅠㅜ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유이의 종이접기와 보자기교실에 참여. 아이들과 어른들과 함께 어울려 뭔가를 만들면서 즐거워졌다. 가위를 달라고 서로 달려들고 예쁜 색종이를 서로 집으려 하고 자기 종이접기를 보아달라 너무 강하게 밀착해오는 아이들이 살짝 무섭기도 했지만.ㅋ
중간에 카메라를 꺼내 아이들과 종이접기 하는 것, 보자기 가방 만드는 것을 찍으려 했는데 갑자기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통 아프리카 사람들은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던데 여기 사람들은 참 사람과의 접촉이 적어서인지 순수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표현하기를 좋아해서인지 카메라를 즐긴다. 처음엔 친구들과 찍어달라더니 나중엔 독사진까지.. "Stop"이라고 내뱉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쨌든 무사히 교실은 끝이 나고 점심 먹고 쉬면서 오후에 있을 본공연 연습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진도아리랑을 부르게 되었는데 루스빌로 아이들이 따라 부르면서 우리가 그들의 <I wish I forget you>를 따라 하게 되고 무대에서도 합동공연을 하기로 약속했다.
오후에는 교회에서 마을잔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전문사회자의 진행으로 여는 시, 에드워드의 멋진 노래, "유스빌로~"로 끝나는 리드미컬한 힙합, 삼각관계를 다룬 연극.. 암튼 무지 다양한 공연을 보게 됐다. 우리는 하림의 <내사랑 내곁에>를 시작으로 진도아리랑, <해지는 아프리카>, <잠보 아프리카>, <아리랑>까지 이어지는 공연을 했다. 아리랑을 부를 때 가롱가 사람들이 함께 불러준 목소리, 소피아님의 눈물이 우리를 찡하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하루에 한 끼밖에 못 먹는다는 그 사람들이 끊임없이 웃고 노래하고 심지어 쉬는 동안에도 의자에 앉은 채로 몸을 들썩들썩하는 흥이 베어있는 몸이었다. 궁핍한 삶에도 끓어오르는 웃음을 짓는 그들, 우리 선조들의 흥과 많이 닮았다. 그래서 아리랑을 좋아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