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노래 찾기

9와 숫자들

비단구두 2010. 6. 16. 23:24

9와 숫자들 - 이것이 사랑이라면 & 그리움의 숲

나는 간혹 <네이버 뮤직>이나 괜찮은 인디씬 앨범들을 구하기 쉬운 <향뮤직>을 들르곤 한다. 우울한 날 마음을 달랠 괜찮은 시집을 찾으러 서점에 가는 것처럼, 내가 찜해 놓은 인터넷 쇼핑몰에 괜찮은 새 물건이 없나 가끔 들러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찾은 앨범이 9와 숫자들이다. 2009년 12월 29일 나타난, 숫자가 되고 싶었던 한 소년이 어른이 되어 만든 사람을 위한, 술에 취한 아버지와 꿈을 꾸는 아들들을 위한 음악을 하고 싶었다는 그들이다.

나도 숫자 9를 좋아한다. 나는 79년 음력 9월 9일생이고, 대학 때 학번도 9번이었다.ㅋ 그래서인지 그냥 9라는 숫자는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온전하게 꽉 차지 않은, 그러면서도 3이 세 번 더해진 안정정인 숫자. 불안정과 안정의 경계, 묘한 매력이 있는.

그리고, 이 음반 참 복고적이다. 왠지 90년대 음악같은 느낌이 난다. 쟁쟁쟁쟁~ 시작하는 기타 사운드들도 그렇고, 시적이지만 유치하기도 한 노랫말도 그렇다. 그런데, 그래서 참 편하다. 누가 들어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 잰 체하지 않는 소소함이 좋다.


이것이 사랑이라면 - 9와 숫자들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내 숨은 멎어버렸죠

산소는 충분했지만 알 수 없는 호흡곤란

이것이 사랑이라면 난 하지 않겠어요

당신을 만날 땐 항상 가슴이 터질 것 같아

겉으론 웃고 있지만 언제나 불안했죠

이것이 사랑이라면 난 하지 않겠어요

전화를 안 받으신다면 이 밤을 지새울게요

날 보고 싶어하신다면 언제든 당신 앞에 나타날게요

당신이 나를 떠날 땐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아픔을 보이긴 싫어 나는 꾹꾹 참아야했죠

이것이 사랑이라면 난 하지 않겠어요



그리움의 숲 - 9와 숫자들

너의 눈빛은 별처럼 밝아서

우리 집에서도 다 보여

나도 알아 한 걸음씩 다가갈수록

거룩한 너의 광채는 내 눈을 멀게 하겠지

너의 목소리는 천둥처럼 커서

내 이불 속까지 다 들려

나도 알아 한 걸음씩 다가갈수록

심오한 너의 언어는 내 귀를 멀게하겠지

매일 밤 나를 찾는 너에 대한 그리움

짧은 한 마디 말도 나는 건넬 수 없네

울창한 너의 숲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나는

빨간 모자를 써도 구조 받을 수 없네

너의 의자는 산처럼 높아서

나는 절대로 앉지 못해

나도 알아 한 걸음씩 멀어질수록

절실한 나의 열기는 조금씩 식어가겠지

너의 침대는 동굴처럼 좁아서

나는 함께 누울 수 없어

나도 알아 한 걸음씩 멀어질수록

선명한 너와의 기억도 하나둘 바래가겠지

매일 밤 나를 찾는 너에 대한 그리움

작은 한 장의 사진도 나는 가질 수 없네

황량한 너의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나는

빨간 튜브를 잡아도 구조 받을 수 없네

매일 밤 나를 찾는 너에 대한 그리움

곱게 접은 종이학도 나는 전할 수 없네

광활한 너의 사막 위에 홀로 남겨진 나는

빨간 연기를 피워도 구조 받을 수 없네

매일 밤 나를 찾는 너에 대한 그리움

짧은 한 마디 말도 나는 건넬 수 없네

울창한 너의 숲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나는

빨간 모자를 써도 구조 받을 수 없네


직설적이고 꾸밈없는 가사, 짱이지 않은가.ㅋ “너의 눈빛은 별처럼 밝아서 우리 집에서도 다 보여.”사춘기 청소년의 첫사랑 같은 풋풋함에서 “전화를 안 받으신다면 이 밤을 지새울게요.”로 이어지는 90년대 감성까지. 거기다 “산소는 충분했지만 알 수 없는 호흡곤란 / 빨간 모자를 써도 구조받을 수 없네.”라는 빵 터지는 개그적 요소까지. 그러면서도 계속 듣게 되는 마력을 지닌 놀라운 노랫말과 사운드다.

그런가하면 경쟁만 가득한, 인정없는 세상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까지 담고 있다. 그것도 한국적인 사운드에 가사까지 더해서. 일렉트로니카가 대세인 요즘 인디씬에서 이런 한국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이들이 있다는 게 반갑다. 아직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연처럼, 9와 숫자들도 빨간 모자를 쓰고 세상을 향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꿋꿋이 계속 낼 수 있길 빈다.


연날리기 - 9와 숫자들

푸르른 젊음의 하늘 위로

어여쁜 연을 띄웠죠

바람이 질 세라 난 바삐 얼레를 풀고

텅 빈 들판 위를 한없이 달렸네

당신의 고마운 말들과

벗들의 속 깊은 배려도

밝혀줄 수 없는 내 속의 어두운 공간

사실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데

에헤라디야, 내 연을 보아라

인정이 없는 이 세상

너 혼자 따뜻해서 뭐 하려구

에헤라디야, 내 연이 난단다

묵묵히 너의 얼레를 감아라

푸르른 젊음의 하늘 위로

어여쁜 연을 띄웠죠

바람이 질 세라 난 바삐 얼레를 풀고

텅 빈 들판 위를 한없이 달렸네

에헤라디야, 내 연을 보아라

상식도 없는 이 세상

너 혼자 똑똑해서 뭐 하려구

에헤라디야, 내 연이 난단다

묵묵히 너의 얼레를 감아라

에헤라디야, 내 연을 보아라

인정이 없는 이 세상

너 혼자 따뜻해서 뭐하려구

묵묵히 너의 얼레를 감아라



숨은 노래 찾기 4편으로 연재(?)를 접는다. 언젠가 정말 소개하고 싶어 근질근질하게 만드는 음반이 있다면, 다시 나올지도 모르지만 인디뮤직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전문가도 아니고 이렇게 글로 음반을 소개하는 일이 버거웠던 게 사실이다. 덕분에 더 많은 음악들을 만나고 내가 좋아하는 앨범을 글로 정리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지만. 암튼, 원고가 늦어질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을 현정샘이 이젠 좀 편해질 듯 싶다. ㅋㅋ 그리고, 부족한 소개글을 읽고, 음악을 찾아 듣고 구입해서 들었을 전교연 식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참, 그 사이 <브로콜리 너마저>의 세 번째 데모 앨범―1집에 비해 아쉬움이 있지만―과 <파니핑크>의 두 번째 앨범 ‘7moment’가 나왔다. 머잖아 <하이 미스터 메모리> 2집―개인적으로 가장 기대되는 앨범―도 나올 예정이고. 이 앨범들과 앞으로도 쭉 이어질 인디뮤직의 행보에 다들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란다.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