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다훈이네 집앞 마들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아슬하게 공항도착. 잠시 미아(?) 신세가 될 뻔했으나 야리와의 통화로 무사히 예뚜들과 합류했다. 다만, 하늘을 날고 있는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액체 미스트 스프레이다. 제발 가방에서 뻥하고 터지지 않길.ㅠ
  오사카 거쳐 카타르 도하로 10시간 넘는 비행을 했다. 비교적 기내식은 훌륭하고 승무원들도 친절했지만 자리가 비좁아 내 다리 길이에도 쥐가 날 지경이었다. 화장실도 무지 멀고. 옆자리에 앉아 같이 온 해남의 세련(수영이 어머니)과는 이야기를 많이 나눈 듯. 고정희 시인 추모사업을 해남 지역 주민들과 열성적으로 하시는 듯하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보였는데 예술적이고 사회적인 일을 하신다니 멋졌다. 언젠가 해남에 고정희 시인을 만나러 가야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항공 베개가 자꾸 부푸는 것을 보면서 마음은 뻥하고 터질 것처럼 불안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기어이 '하쿠나 마타타'는 읽었지만.

  
  지금은 카타르 도하. 현재기온 16도. 내가 중동의 한가운데 와 있다는 게 신기하다. 아랍어로 쓰여진 안내판이 판화에 새겨진 동물 무늬같은 그 글자가 이곳의 문화와 공기를 느끼게 해준다. 아랍어는 해독하긴 어렵지만 내 어릴 적 낙서처럼 친근한 반가움이 있다. 그리고 그을린 피부를 가진 사람들, 히잡과 차도르를 쓴 아랍의 여성들, 챙이 없는 모자와 바람이 송송 통할 것 같은 통 넓은 흰 바지를 입은 아저씨들이 지나간다. 영화 '천국의 아이들'에 나왔을 것 같은 아이가 흰 원피스를 입고 손톱엔 봉숭아물을 들이고 금팔찌를 한 채 앉아있다. 내 뒤에서 시끄러운 목소리로 쏼롸쏼롸 해대는 중국인 아저씨도 완벽한 레게머리를 한 까만 피부의 엄마와 아들도 신기하다. 이 낯선 사람들 틈에서 낯선 언어의 리듬과 색다른 사람들의 생김과 분위기, 그것도 어디론가 떠나는 공항이라는 장소가 가지는 설렘 속에 내가 또 하나의 풍경으로 그들과 함께 담겨있다는 게 참 좋다. 아랍 문화의 특성상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 그냥 눈에 넣는다.


  다시 10시간 가까운 비행. 이제 곧 케냐의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한다. 장장 20시간 가까운 비행을 마치는 순간이다. 인도네시아에 이어 적도 부근 두 번째. 여행자들의 로망이라는 아프리카는 내게 어떤 얼굴을 보여줄지, 나는 그곳에서 나에게, 사람들에게, 아프리카에 어떤 나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나이로비 공항 도착. 밖을 나오자마자 "아프리카 안녕!"이라고 외치는 나를 맞은 건 땅과 맞닿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 하늘. 그리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 설렌다! 나도 모르게 "안녕!"이라고 외쳤다. 생전 처음 보는 하늘 가까운 도시에 첫발을 내디딘 기념으로.


  드디어 쭈의 안내로 우리가 21일 동안 타고 다닐 트럭버스 메뚜기를 만났다.(메뚜기는 하림이 붙여준 이름이다) 2층 트럭이라니. 이런 건 또 처음일세. 사람들과 폴짝폴짝 메뚜기를 타고 하늘 위를 달리는 기분을 매일 맛보는 거다. 
  우리와 함께하게 된 리더 JT, 드라이버 뭉가이, 셰프 헨리. 다들 친절할 것 같은 느낌. 덕분에 몇마디 스와힐리어를 배웠다. 아싼떼, 카리부에 이어 하람베(다같이). 가자!도 배웠는데 기억이 가물가물.ㅠ
  이어서 오늘밤 함께 텐트를 쓸 짝을 뽑았는데 난 혼자다. 그래서 버스에서라도 유이와 함께 앉았다. 바깥에 보이는 처음보는 화려한 색깔의 나무들, 건물들, 그렇지만 역시 반가운 건 사람이다. 그것도 낯선 이방인인 우리에게 환하게 손을 흔들며 잠보!를 외쳐주는 아이들.
  잠시 니쿠마켓이라는 마트에 들렀는데 규모에 놀라고 말았다. 우리 홈플러스 이마트보다 크다니. 없는 것도 없고. 사람들도 그곳에서 척척 물건을 사는 걸 보며 신기해했으나 생각해보면 그들은 이 도시의 상류층일 터였다. 재래시장이 아닌 마트에, 자본에, 익숙해진. 케냐 돈으로 환전을 하지 못한 우리는 구경만 하고 돌아섰다. 


  그러는 동안에 날이 흐려지고 시간이 바쁠 것을 예상해 차를 캠핑장으로 돌렸다. 아카시아 캠핑장. 난생 처음으로 텐트를 손수 치고 잘 준비를 하던 참에 후두둑,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역시 우기. 비 때문에 첫날 캠핑은 취소됐지만 비가 와서 더 즐거워진 우리는 피곤한 몸을 따뜻이 뉘일 방갈로와 침대를 얻었다. 
  짐정리를 하고 씻으러 간 샤워장. 아프리카에서 그렇게 깨끗한 1인용 샤워장을 쓰게 되다니. 그리고 빗속에 시작된 우리의 만찬도 훌륭했다. 토마토 스프에 빵 찍어먹고 콩과 토마토를 함께 볶음 음식에 피망이 올려진 흰쌀밥. 그리고 나에겐 별로인 쇠고기 볶음. 암튼, 훌륭한 식사에 tusker라는 흑맥주 맛이 나는 맛난 맥주를 곁들이며 유쾌한 사람들과 멋진 식사를 마쳤다.
  식사 후에는 하림의 <해지는 아프리카>를 배우며 우클렐레와 사람들의 멜로디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시간을 가졌고, 그러다 갑자기 비가 그치고 별이 나온 것을 발견한 내가 "오리온이다!"를 외치자 오리온과 시리우스에 대한 이야기, 별의 역사를 이야기하던 남지가 레이저빔을 들고 운동장으로 나와 본격적인 별자리 공부가 시작됐다. 겨울철 별자리 대삼각형과 오리온, 큰개 작은개자리, 오리온의 칼인 시리우스, 별에도 나이가 있다는 것, 그리고 오늘 제대로 보이지는 않는 남반구의 북극성인 남십자성을 우리가 생애 처음으로 만나게 될 거란 이야기를 별같은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그 순간들은 내가 아프리카의 원시, 순수, 하늘과 만나고 먼 옛날 별을 보고 농사를 짓던 이집트 사람들과 별을 우리의 사는 모습이라 여겼던 우리 조상들과 만나고 먼 미래일지 과거일지 모를 또다른 별의 나와 같은 생명체를 만나는 새로운 문을 연 시간이었다.

  침대로 돌아와 모기장에 침낭 속에서 다들 잠을 청하는 가운데 기억의 한 자락이라도 더 붙잡기 위해 일기를 쓴다. 그리고 잔다고 해놓고 조금 전까지 함께 불을 밝히고 있던 옆침대의 여행 친구들이 고맙다. 아름다운 밤이다. 아프리카 여행을 시작하기에.

별의 저 먼곳에서도 나와 함께 좋은 꿈을 꿀,
내 친구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Posted by 비단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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