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씻고 시간부터 물었다. 너무 늦은 건 아닌지 걱정을 했으나 여유로운 시간이다.ㅋ 이젠 아침에 일찍 자동으로 눈도 떠진다. 짐정리를 마치고 승달이를 데리고 나와 사람들과 마지막 아프리카를 바라보다 차에 올랐다. 너무도 아쉬워하며 사람들과 아프리카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는 여몽과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 남은 여행을 준비하는 쭈.
    드디어 짐바브웨 빅폴 공항으로 이동. 아직까지도 채 사지 못한 선물을 공항에서 사고, 하림에게 싸인도 받고 젬베에 그림도 그려주는 거 구경하고 앉았다가 탑승 게이트로 향했다.
  요하네스버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닉 부부를 만났다. 인상 좋은 할머니는 내게 이런저런 말을 건네고, 그러나 영어가 짧은 나는 할 말을 맘대로 하지 못했다. 이럴 때면 영어를 배우고 싶단 생각이 간절..ㅜㅜ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공항에 내리니 2010 월드컴 열기가 벌써 한창이다. 보딩하는 동안 목적지가 도하로 된 티켓 때문에 혹시 짐만 거기서 내릴까 걱정이 돼서 승무원 언니한테 이것저것 물었더니 내 영어는 알아듣기 힘들어하는 눈치다.ㅡㅡ" 쪼그라드는 나. 공항 안에서 물건을 사는 동안에도 의사소통이 시원치는 않다. 남아공 피파 공식주 '아마룰라'를 사려했으나 잠시 미루고 비행기에 오르길 기다리는 중. 지리한 비행기 투어 또 시작이다.






 
  
  다음날.
  아침 4시 10분에 눈을 떴다. 도하로 가는 카타르 항공 비행기 안. 아침을 먹고, 소설 한 편을 읽고 앉아 있으려니 창 너머로 살몃 해가 뜬다. 또다른 아침이다. 처음엔 빼꼼 내민다 싶었는데 어느새 중천에 떠서 눈을 뜨고 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렇게 밝아오는 아침에 다짐 한 가지. 정말로 영어공부 시작해보기. 김연수의 소설과 여행 중에 느끼는 소통의 어려움이 만나 영어를 부른다. 그네들의 말로 그들을 느껴야 진짜로 만나는 거겠지만 공용어로 쓰이는 영어는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소통에 매개체가 되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영어가 제아무리 자본주의적인 권력의 얼굴을 가졌다해도. 나도 다음 여행 때는 괜찮은 외국인 친구를 하나 만들고 싶다. 누구의 도움 없이 내 입에서 나온 말들로.
 
  카타르 공항 도착. 7시 반이 넘었다. 약속대로 9시쯤 카타르 투어 시작. 낙타시장을 출발해서 야채시장에서 과일을 듬뿍 먹고(내 달러는 이걸로 끝이 났다ㅠㅜ) 결마장엘 들렀다가 아바리바해와 카타르의 번화한 빌딩숲이 한 눈에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고 지금은 카타르 시장 거리에 와 있다. 겨우겨우 찾은 시장 골목의 밥집에서 야채커리를 먹고 커피빈에 와서 바닐라 카페라떼 한 잔을 하고 난 후다. 날이 덥고 그늘만 오면 시원해서 무거운 빔을 벗고 승달, 따슬이와 카페에 앉아서 쉬고 있다. 사막과 참 잘 어울리는 아라베스크 문양의 집들과 터번에 차도르를 쓴 사람들 사이에서 또 다른 바람과 향기를 느낀다. 사람들의 땀냄새보다 향신료와 바다내음이 강한.





  카타르의 아랍박물관엘 들렀다. 스페인에서도 느꼈던 그들의 예술과 과학이 거대하게 다가왔다. 사막의 땅에서 피어난 문화, 그래서 소박하고 깔끔하지만 내부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척박한 땅에 살면서 별을 바라보도 더 큰 우주를 품었던 그들. 코란과 칼, 천문도구들이 인상적이다.
  돌아와서 다시 시장. 까무, 쑤, 유이, 남지와 현지 식당에서 밥이랑 치킨 스튜를 사먹었는데 왕 맛있다. 그리고 엄마 선물을 사러 돌아다녔으니 결국 실패(신기하다고 물담배를 살 수도 없고ㅡㅡ), 물건 산 것도 무겁고 다리도 아파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먼저 왔다.
  드디어 돌아가는 비행기 탑승이다. 참, 오래도 걸리겠다.


 

  다음날.
  여행 마지막날. 비행기에서 주는 기내식 열심히 먹고 또 자고 하다보니 오사카 도착이다. 엄마 선물은 결국 카타르에서 영양크림으로. 그러나 남아공 공식주 아마룰라를, 그리고 나의 베일리를 사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ㅠㅠ
  사람들과 헤어질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바깥에 또 다시 해가 지고 있다. 곧 인천에 도착하겠지. 마지막 기내식 열심히 먹고 2010년에 할 일 열심히 일기에 적어봐야겠다. 아프리카의 기운이 사라지기 전에.

 
Posted by 비단구두
l
  
  내 생애 첫 비행, 번지를 마쳤다. 여기는 내 날개의 고향이 될 잠베지강. 이 협곡 사이로 내가 비상을 했다니 정말 행복하다. 번지대 위에 서서 등 뒤로 받쳐주는 공기의 포근함을 느끼며 평화롭게 추락하는 기분. 툭, 하고 떨어질 줄 알았는데 정말 나를 받쳐주는 누군가의 커다란 손이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생각보다 천천히, 가볍게 날 수 있었다. 탁, 하고 걸리는 순간도 생각보다 부드러웠고. 그리고 허공에 뜬 내 몸에 긴장을 풀었을 때 콩콩 튀어오르는 공처럼 내 몸이 허공 중에 붕붕 뜨는 것도 즐거웠다. 영화 샤인의 바바리맨 장면 같은 느낌?^-^ 눈물나게 행복하다는 게 이런 거구나. 서른이 넘은 첫 비행. 이만큼 아름다운 사랑을 올해는 할 수 있길 마음으로 바랐던 순간.


  지금은 잠베지에 비가 내리고 눈을 감으면 외국인들의 블라블라 영어와 어딘가로 톡톡 떨어지는 빗물 소리, 내 귓가와 어깨 위로 내 날개처럼 불어오는 바람과 잠베이지의 물이 불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조용히 울어대는 낮은 바리톤의 천둥소리까지. 이 비 때문에 우리의 일정이 늦어지고 식사도 늦어지겠지만 잠베지의 숨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리는 선물을 얻었다.

  돌아와서 텐트 안에 잠시 몸은 뉘였으나 더운 열기만 후끈이다. 빨래를 널고 쉬다 4시 선셋크루즈로 갈아타기. 아프리카 토속음악단이 들려주는 아프리카 소울이 강한 '블랙맘바조"의 <homeless>를 들으며 배에 올랐다. 유유히, 조용히, 느긋하게 흐르는 잠베지처럼 느리게 움직이는 크루즈에서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맥주를 마시고 노래하고 놀다가 잠베지 너머로 지는 해를 보며 돌아왔다. 



  저녁이 돼서 나미비아 비자를 받으러 갔던 쭈가 돌아오고, 그 기념으로 그리스 보드카 '우조'를 마시며 다시 하림의 음악회 시작, 술을 마셨더니 좀 취해서 생전 처음으로 야리의 담배를 한모금 했다. 아프리카산 타르 15짜리 ㅋ. 생각보다 난 아주 멀쩡하다. 아프리카의 밤, 취한다!


 



  다음날.
  느지막하게 텐트에서 눈을 떴다. 일어나는데 목이 완전 뻐근. 괜찮다 생각했는데 번지하면서 긴장을 하긴 한 모양이다. 고개가 뒤로 확 젖혀지질 않는다. 씻고 오늘의 목적지 빅폴로. 승달, 따슬, 호프, 쭈, 모자, 용과 함께 아침으로 치킨버거를 먹고 출발했다.


  '모시오야툰야 - 끊임없이 안개가 피어오르는 커다란 천둥 소리'라는 이름처럼 내가 만난 빅폴은 끊임없는 안개와 수많은 물방울로 우리를 맞았다. 작은 물방울들이 어디선가 마구마구 날아와 내 얼굴에 머리에 손목에 깔깔대며 부딪치는 기분 좋은 느낌. 그러다 눈을 감으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모시의 거친 숨결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백발마녀의 미친 듯 풀려나오는 끝없는 머리카락 속 숨은 이야기 같았다가, 보였다 안 보였다를 반복하며 물방울을 뿜어내는 커다란 고래 한 마리가 폭포 아래에서 살고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천둥소리 같은 모시의 숨소리를 들으면 박지원의 '열하일기'중 '일야구도하기' 대목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렇게 큰 자연 속에 내가 정말 작은 점으로 서 있는 느낌. 저 물방울들이나 나나 다를 게 없다는 것. 한편으론 아프리카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게 아닌가 하는 아픈 느낌까지도 가진 모시를 만났다. 가장 아름다웠던 곳은 역시, 레인보우 포인트. 쌍무지개가 쌍으로 나타나는 행운을 만나게 해 준 곳. 

  돌아와서 젖은 몸을 말리기도 전에 피자라지에 치킨, 아이스크림에 콜라까지 양껏 배를 채웠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와서 음식을 남겼더니 벌 받을 ㅡㅡ 

  그리고 숙소를 옮겼다. 텐트가 아니라 숙소로. 승달이와 따슬이와 내가 한 방. 오늘밤이 아프리카의 마지막 밤이라 조금은 편안하게 마지막을 정리하고 싶었던 거다. 조용히 앉아 잠베지 맥주를 마시며 일기를 쓰다 어딘을 만나 손금을 봤다. ㅜ 건강 조심하고 몸의 신호를 잘 받아들이란다. 그리고 운명을 기다리라는. 암튼, 운명 그까이꺼 사람의 일이니 다 마음먹기 달렸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뜨겁게, 건강하게 살아야겠다. 오늘밤도.
   
  밤이 됐다. 아프리카의 마지막밤. 돌아가면서 아프리카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모두들 꿈꾸는 눈으로, 이제 조금씩 현실도 바라보기 시작하는 듯. 밤을 꼴딱 새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비의 방해로 조금 일찍 끝이 났다. 모시의 물방울이 다시금 살아오는 듯한 빗속에서 밤은 깊고, 그리고 비 갠 후에 드디어 남십자성을 만났다. 밝게 빛나는, 남쪽의 북극성같은 길잡이별. 저 남십자성이 내가 사는 북반구에선 보이지 않아도 분명 존재하면서 다른 이들의 밤을 밝혀주는 것처럼 내게도 어디선가 숨어서 나를 비춰주는 길잡이가 되어주는 별이 있을 것만 같았다. 밤이 늦어져서 술도 떨어지고 하림이 공수해 온 맥주에 이야기를 기운이다 잠이 쏟아지는 무게에 밀려 잠이 들었다.

Posted by 비단구두
l

  아침 5시 좀 넘어서 일어났다. 정리하고 밥. 오늘따라 호밀빵이 너무 맛있어서 아침을 양껏 먹었다. 오늘도 출발시각에서 10분 늦었다고 JT가 가탈이다. 맨 뒷자리 중하 옆에 자리를 잡았으나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자리가 축축. 덕분에 하림 옆에. 감사^^
  아침내내 하늘을 만나고 바람을 만나고 시를 읽었다.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하늘과 시시각각 달리 부는 바람. 바삭한 갓 구운 쿠키 같았다가 아프리카의 백설기 같았다가 파파야로 변하는 바람과 바다를 그대로 데칼코마니 해 놓은 듯한 하늘. 그 속의 우주, 그 속의 나를 만나는 평온한 시간이었다. 
  중간에 잠깐 뒤로 향하는 자리에 앉았더니 갑자기 멀미 시작. 그나마 점심을 먹고 나니 나아졌지만 그래도 힘들어서 쓰러져 잤다. 그러는 동안 잠비아의 중심부에 도착. 눈을 떴는데 전혀 다른 아프리카가..! 쇼핑센터가 즐비하고 공사장의 인부들까지도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DSLR을 들고 다니고 패스트푸드에 고급 상점이 펼친 데다 강력 에어컨까지. 이건 상상도 못한.



  우리가 가진 말라위 콰차를 잠비아 콰차로 환전하러 내렸는데 돈이 교환이 안된단다..ㅜ 결국 10달러를 잠비아 콰차로 환전, 하루 있을 잠비아에서 돈이 남으면 어쩌나 했더니 아니나다를까 물가가 장난 아닌. 승달이랑 그렇게나 먹고 싶던 오렌지주스를 먹고 물이랑 스낵 좀 샀는데 돈이 반이 없어졌다. 게다가 맛있어보이는 피자는 20000콰차가 넘는다.ㅜ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는데 이걸 쓰는 지금도 눈에 아른아른..

  숙소에 도착. 6시 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어, 발자국이 크다 싶었더니 이렇게 발목까지 잠길만큼 내릴 줄이야. 내리지도 못하고 메뚜기에서 숙소 예약을 했다. 덕분에 오늘밤은 편하게 도미토리에서 자기는 하지만 이렇게 장마가 쏟아지는 아프리카는 낯설다. 
  내 자리에 빗물이 들이치는 동안 또 나를 발견한다. 줄줄 새는 비를 막기 위해선 오히려 창을 조금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 하림이 가르쳐준다. 사는 게 참 이렇다. 이만큼만 비우고 포기하면 되는 건데 꽁꽁 닫아두려하니 마음에 비가 들이치는 거다. 아프리카에 와서 참 여러가지를 배운다. 
  비 때문에 땅이 질척, 엉망인 발로 숙소에 갔다. 지금은 예쁜 승달이가 돈없는 나를 위해 사준 모시와 카슬을 마시고 앉아 일기를 쓰는 중이다. 당구를 치는 모자와 용, TV 속 축구중계에 빠진 JT와 늘, 멍하게 앉은 승달, 그리고 어딘과 언니들.
  갑자기 문명 속으로 들어와 버린 어색한 아프리카 안에서 랜턴에 의지에 밥을 먹고 난민처럼 살고 나니 다시 익숙한 아프리카가 맞는 거 같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자리, 술, 좋은 밤.
  




  다음날.
  와우, 벌써 20일이다. 오늘은 남지가 일어나는 소리에 잠을 깼다. 오랜만에 따순물로 몸을 깨끗이 씻고 짐바브웨로 출발. 메뚜기에 올랐더니 바로 잠이 쏟아져서 암 생각없이 푹 잤다. 여행이 오래되니 메뚜기 안에서 줄곧 잠이다. 자다 깨서 점심 도시락으로 싸온 감자 샌드위치를 먹고 화장실이 급해 차를 세웠으면 한다 했는데 "조금 있다 세워요."하는 내 말은 어디로 가고 JT가 바로 차를 세웠다. 식구들과 화장실을 가기 위해 길에 내렸는데, 엉덩이를 보이든지 말든지 길가에 쌩쌩 차는 지나가고 비마저 우두둑!!ㅜ 옷 추스리고 메뚜기로 뛰는데 그냥 웃음만 쿡쿡 났다. 그나마 난 거의 젖지 않았지만 나중에 오는 식구들은 비에 절어서.ㅋㅋ!

  드디어 잠비아를 지나 짐바브웨로 넘어왔다. 빅폴, 아니 모시오아툰야의 물보라가 출입국 관리소 앞까지 날아온다. 얼마나 모시가 크길래 한참 떨어진 이곳까지 물방울을 날려 우리를 반기는 건지. 출입국 관리소도 여기는 도장 쾅쾅, 무사 통과다.
  캠프 사이트에 와서 승달이와 텐트를 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오랜만에 나온 치킨에 약간은 촉촉한 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뒹굴거리다가 승달이랑 따슬이를 데리고 나가 아프리카에서 제일 맛있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콘을 사 먹고 돌아와 쉬었다. 문명의 이기가 좋기는 좋구나. 잠깐 쉬다 어딘의 제안으로 맥주를 사러 갔는데 10병에 9.5달러. 병을 갖다주면 6.5달러란다. 재활용이 힘든 아프리카라 병값이 장난 아니다. 
  실컷 맥주를 마시며 간만의 음악회에 함께 했다. 가고 싶었던 하림의 천변살롱 공연에서 부르는 노래들을 들을 수 있는 엄청난 기회! 풍각쟁이같은 개화기부터 1940년대의 흘러간 노래들을 하림의 목소리로 들었는데 참 재치있고 흥겹고 소박한 노래들이었다. 그 때의 풍경들이 살아나는 듯한 느낌이 참 좋았다. 하야리 하야~ 인력거 소리 같은. 그리고 갑작스레 나도 노래 한 자락. 사랑가부터 창부타령..ㅋ 그리고 하림의 단소소리가 이어졌다. 아프리카인지, 우리나라인지, 몇 년대인지 알 수 없는 시공의 만남 속에 타임머신을 탄 듯한 기분 좋은 밤이 이어졌다. 우리 머리 위에 뜬 별이 그 때 빛나던 별이었을지 어떨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도란도란 어딘선가 들려오는 소리들을 들으며.




Posted by 비단구두
l

  가롱가를 떠나왔다. 하루 더 있을 예정이었으나 불편한 잠자리와 샤워시설, 그리고 우리의 살을 파고드는 빈대와 벼룩에 쫓겨, 내일이면 잠보팀이 온다기에 그냥 하루 일찍 떠나기로 정한 거다. 하루를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좀더 편안한 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도 동시에 들어 복잡하다. 하지만, 이미 결정이 난 일. 선교사님과 루스빌로 식구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메뚜기에 올랐다.
  쨍하던 하늘이 잿빛으로 바뀌더니 차창에 비가 들이친다. 비도 축축하고 하림의 하모니카, 우클렐레 소리도 축축하고 커피 한 잔 생각난다. 옆에서 여몽이 "나이먹을수록 급해진다, 폴레폴레가 필요한데"라는 말을 듣고 문득 생각해본다. 살아온 날이 많다는 건, 세상을 우주를 더 안다는 건데 왜 살아갈수록 우리는 자꾸만 조급해지는 걸까.

  칸데비치 캠프장에 도착했다. 말라위 호숫가에 자리잡은 그림자같은 곳이다. 말라위 호수는 말라위 면적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엄청나게 큰 호수인데 바라보는 우리에게 바다를 떠올리게 했다. 어찌나 큰지 바람이 불어 바도도 치고 넓은 백사장도 펼친다. 그러고보니 짠내는 없군.ㅋ
  게다가 칸데비치는 배고픈 여행자들에겐 천국!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땅위에 작은 망고들이 데굴데굴 굴러다닌다. 씻어서 껍질만 까서 입에 넣으니 망고맛에 단감맛이 더해진다. 음, 향긋~~ 그래서 나도 그 자리에서 3개나 까먹었다. 망고 많이 먹으면 탈난다던데 ㅋㅋ 뱃속이 멀쩡하니 입이 욕심을 부린다. 이렇게 아름다운 칸데비치에 속상한 것은 도둑이 많다는 것! 덕분에 우리는 텐트에 아무것도 넣지 못하고 오나전 긴장 상태로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침낭에 빨래까지 가져가는 무서븐 도둑놈들이 기승이라니 조심해야지.



  밥을 먹고 모여 앉았는데 유이, 어딘, 남지, 까무, 여몽, 야리와 함께 술을 먹다가 어딘이 아이들과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들었다. 승달이와 모자를 비롯한 아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여행에 와서 통제받는 것에 대한 불만, 청소년이기 때문에 어른들 속에서 겪는 어려움 등을 이야기했단다. 그리고 여행학교 교장인 어딘과 토론 끝에 합일점을 찾고 가능한 자유시간과 그만큼의 책임을 갖기로 약속했다는. 오, 멋진 아이들이다. 역시. 우리 어른들보다 훨씬 낫다. 소통에 대해 고민하고 부딪치고 해결하고. 그리고 그런 아이들 덕에 우리도 여행과 소통과 우리 사이의 이야기, 여행에 관한 생각들을 나눌 수 있었다. 호프도 가롱가에서 잃어버린 카메라에 대한 어딘과의 대화에서 서운했던 점을 털어놓게 되고. 

  그리고 쭈의 여자친구 덕에 또 하림콘서트 2탄을 열게 됐다. 감사하게도 하림과 거의 듀엣을 또 하다시피 ㅋㅋ 너무 뿌듯하고 즐거운 시간. 그러고보니 저녁을 먹기 전 따슬이와 하림에게 젬베를 더 배우기도 했고 어울려 연주하는 법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 것 같아 좋다. 수확이 여럿이군.
  밤에는 여몽의 제안으로 호숫가 달리기를 했다. 오랜만에 맨발로 모래밭을 달리니 기분 짱!! 피곤해서인지 잠자리에 들자마자 눈이 감긴다. 오늘은 여행에서, 아니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소통을 이룬 날이다.



  다음날.
  칸데비치의 아침. 4시 반 기상. 오늘은 어찌나 예쁜 텐트를 만났던지 후다닥 잘도 개진다.ㅎ 내 텐트를 개고 야리의 텐트까지 도왔다는. 말라위에서 잠비아까지 이동하는 날이다. 새벽밥을 먹은데다 3시간 밖에 자지 않아서인지 맨 뒷자리에서 거의 닭이 되어 잠에 취했다. 그런데 한참을 유난히 덜컹거리던 차가 멈춰섰다. 메뚜기 고장. 부품을 가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주린 배를 채우기로 했다. 쫄깃한 빵이 유난히 맛있어서 샌드위치로 2개, 잼 발라서 2개나 먹고 차에 올랐는데 메뚜기가 영 움질일 생각을 안 한다. 그러는 동안에 아예 두 자리를 차지하고 제대로 자고, 일기도 쓰고, 책도 보고 내 시간을 가졌다. 사람들은 하림의 체스판으로 체스도 두고 역시 책도 읽고 우클렐레를 튕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한다. 그러는 동안에 훌쩍 시간이 가고, 날이 흐려지고 차를 끓여마시고 저녁이 되어간다. 

  드디어 JT와 쭈가 나타나 출발을 알렸는데 JT의 말이 길다. 말라위가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걸 당국에서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나 어린아이들의 사진을 동의없이 찍지 말라고. 웬? 하고 의아해했더니 쭈가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경찰서까지 가서 여권번호까지 적고 왔단다. 이런.. 그리고 만일의 경우 국경을 넘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를 한다.

  참 어려운 나라다. 말라위. 아름다운 말라위 호수가 면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나라. 그러나 큰 관광자원은 아니라 가난한 나라. 물이 많은데도 가둬두거나 유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농사짓는 법도 모르는 어려운 나라. 평균수명은 40세, AIDS와 말라리아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많고 드넓은 탄자니아에 비해 곳곳에 사람들이 보이는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 국경을 통과하는 주도로마저도 덜컹거림이 가득한, 그리고 곳곳이 덜컹거리는 나라. 가난 때문에 그걸 면하려고 비자피는 가장 비싸고, 세렝게티나 빅폴처럼 대단한 관광자원도 없고, 가난을 가지고 벌이를 하면서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곳곳에 차를 세워 검문을 하는, 함부로 사진도 찍을 수 없는 나라, 너무 가리고 있어서 속으로 얼마나 곪았는지 알아차리기 힘든 나라. 오늘의 하늘만큼이나 착 가라앉게 하는 덜컹거림이다. 말라위.   

  10시 넘어 맘마룰라에 도착. 까무와 한 방. 지금까지 중 제일 멀쩡한 숙소를 만나 개운하게 씻고 빨래, 버블도 했다. 맥주 한 병이 조금은 아쉬운 밤이다.
  
  
Posted by 비단구두
l
 
  새벽기상 4시 반.  오늘은 이상하게도 텐트가 말을 듣지 않았다. 제대로 접어지지 않아 고생, 거기다 쇠막대가 빠지지 않아 결국엔 트럭에 그냥 실었다는. 드디어 탄자니아를 떠나 말라위의 루스빌로로 가는 날이다. 한참을 달리는 동안 어제 우리의 메뚜기 안에는 어제 이슬 맞은 젖은 빨래들이 잔뜩 걸리고 나도 오늘은 배낭을 빨랫대 삼아 얇은 남방 안으로 속옷을 말리며 갔다. 이링가가 고산지역이라더니 새벽부터 아침까지 반팔티+집업+바람막이+기모바지를 입고도 맨발이 춥다. 운동화 어딨어.ㅠㅠ 그런데 탄자니아와 말라위 국경 근처로 가면서 날이 급격히 더워지기 시작한다.

   점심을 복숭아+옥수수1/5쪽+샐러드로 때우고 국경으로 향했다. 말라위 국경! 처음으로 걸어서 국경을 건넌다. 지나는 아이들에게 손도 흔들면서 씩씩하게. 예전 캄보디아 국경을 넘을 때완 달리 1달러를 외치는 아이들이 없어서 좋다. 그렇지만 대놓고 비자피로 100달러를 받는 무지무지 비싼 곳이 아닌가. 이런, 오메, 말라위는 비자피만 비싼 게 아니라 시간도 엄청 잡아 먹었다. 무슨 국경통과가 그리 어렵다고 도장을 안 찍어주는 거다. 국경 통과시키는 공무원놈 눈빛도 저질이고. 그리고 국경 검문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Stop The AIDS라는 커다란 포스터. 말라위가 동아프리카에서도 가장 많은 아이들이 에이즈로 죽어가는 고통의 땅이라더니, 그 문턱에 들어선 게 확 실감이 난다. 에이즈가 아무렇지않게 퍼져 있는 이 땅에 우리가 만날 가롱가 루스빌로 고아원의 아이들이 있다.

  가롱가에 입성. 멋진 캠프장을 찾았으나 운영을 안 한단다. 그래서 루스빌로부터 일단 둘러보기로 했는데.. 허걱, 엄청난 숫자의 아이들이 아프리카 소울이 강한 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우리를 맞는 게 아닌가. 버스라도 들어올릴 기세로. 그 아이들의 기에 눌려 잠시 멈칫 했지만 우리도 우리의 주제곡 <잠보  아프리카>로 응수했다.ㅎ 
  그리고 선교사님이 아이들과 함께 우리가 묵을 곳을 다 치워놓으셨다고 하셔서 그냥 신세를 지기로 했다. 5일 전에 지진이 크게 있어서 다른 건물은 무너지고 금이 갔는데 온전히 서 있는 건물 한 채를 우리가 쓰기로 한 거다. 우리나라 푸세식 화장실보다 구멍도 적게 뚫린 화장실에 한 사람 몸 뉘일 공간 밖에 없지만 하루이틀, 루스빌로에서 지내기로 했다. 기왕 아이들과 부대끼기로 한 거.


  진형근 선교사님은 2년 전에 아무것도 없이 영어도 모르는 채로 오로지 농업과 선교활동에 대한 꿈만 가지고 이곳에 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사모님도 너무 좋으신 분. 가롱가의 순박하고 긍정적인 사람들을 사랑하고 종교적인 믿음과 특유의 낙천성으로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아니 즐기는 두 분을 보면서 진정한 행복에 대해 생각했다.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큰 정신적인 기쁨으로 산다는 분들. 우리는 우리 손 안에 있는 것들을 틀어쥐고 사는 것 같다. 그러고도 더 많은 것을 쥐려고만 하고. 정신적인 행복은 그동안에 손가락 틈으로 다 새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다음날.
  루스빌로의 아침. 좁은 모기장과 매트, 내 몸 하나를 뉘일 수 있는 공간만 있어도 참 좋다는 느낌이 든다. 닭과 한 방에서 자더라도.ㅋ 닭소리로 시작하는 아침도 오랜만이고.
  느지막히 일어났지만 오늘 아이들과 한 연극놀이 때문에 고민이 많다. 공책에 순서를 쓰고, 뭐라고 말을 할까 그려도 보고, 다행히 어딘이 있으니 통역은 걱정 안 해도 되고, 뭐 어차피 몇 마디 안 할 거니까.. 몸으로 하면 되는 거고.

  밥을 먹고 유스센터로 이동해서 연극놀이 할 장소를 물색하는 동안, 소심한 성격 때문에 아이들을 어떻게 모을까 고민만 하는 동안 10시가 되었다. 놀랍게도 그동안 여몽은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그 동네 아이들이 매일 지나는 길에 봐 왔을 꽃과 나무를 느끼고 만지게 하고 놀게 하고 있었다. 놀라운 여몽. 숲해설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여몽의 그런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부럽다.
  또 다시 그러는 사이에 엠프가 설치되고 갑작스레 공연이 시작됐다. 원초적으로 남녀가 무릎을 부딪치고 골반을 돌리는 춤 사이에 아프리카 특유의 하울링이 강한 노래들이 섞이면서 아프리카만의 몸짓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놀라운 실력의 아크로바틱까지. '이 사람들은 정말 몸으로 이야기를 하는구나'가 팍팍 전해오는 순간이었다. 마임 같은 건 배우지 않아도 섬세하게, 멋지게, 열정적으로 뿜어낼 자연스런 몸짓, 그 속의 흥.


 그러다 12시가 되고 공연이 그대로 두면 그치지 않을 것 같아 하림의 중재로 우리의 문화교실을 열게 됐다. 남지의 목공예, 유이의 보자기로 가방 만들기, 하림의 기타교실, 용의 축구교실, 그리고 연극놀이.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리쬐는 볕 때문에 연극놀이는 접어야했다. 한편으론 맘이 편하기도 했지만 서운하기도.ㅠㅜ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유이의 종이접기와 보자기교실에 참여. 아이들과 어른들과 함께 어울려 뭔가를 만들면서 즐거워졌다. 가위를 달라고 서로 달려들고 예쁜 색종이를 서로 집으려 하고 자기 종이접기를 보아달라 너무 강하게 밀착해오는 아이들이 살짝 무섭기도 했지만.ㅋ
  중간에 카메라를 꺼내 아이들과 종이접기 하는 것, 보자기 가방 만드는 것을 찍으려 했는데 갑자기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통 아프리카 사람들은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던데 여기 사람들은 참 사람과의 접촉이 적어서인지 순수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표현하기를 좋아해서인지 카메라를 즐긴다. 처음엔 친구들과 찍어달라더니 나중엔 독사진까지.. "Stop"이라고 내뱉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쨌든 무사히 교실은 끝이 나고 점심 먹고 쉬면서 오후에 있을 본공연 연습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진도아리랑을 부르게 되었는데 루스빌로 아이들이 따라 부르면서 우리가 그들의 <I wish I forget you>를 따라 하게 되고 무대에서도 합동공연을 하기로 약속했다.
  오후에는 교회에서 마을잔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전문사회자의 진행으로 여는 시, 에드워드의 멋진 노래, "유스빌로~"로 끝나는 리드미컬한 힙합, 삼각관계를 다룬 연극.. 암튼 무지 다양한 공연을 보게 됐다. 우리는 하림의 <내사랑 내곁에>를 시작으로 진도아리랑, <해지는 아프리카>, <잠보 아프리카>, <아리랑>까지 이어지는 공연을 했다. 아리랑을 부를 때 가롱가 사람들이 함께 불러준 목소리, 소피아님의 눈물이 우리를 찡하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하루에 한 끼밖에 못 먹는다는 그 사람들이 끊임없이 웃고 노래하고 심지어 쉬는 동안에도 의자에 앉은 채로 몸을 들썩들썩하는 흥이 베어있는 몸이었다. 궁핍한 삶에도 끓어오르는 웃음을 짓는 그들, 우리 선조들의 흥과 많이 닮았다. 그래서 아리랑을 좋아했던 걸까?
   

 
Posted by 비단구두
l

  오늘은 어딘 옆에서 눈을 떴다. 어딘과는 큰 불편없이 그냥 그렇게 잔 것 같아 다행이다. 그러나 아침부터 "You are very shy." 로 시작해서 "She's mine."이라며 뭉가이와 헨리 앞에서 추근대는 JT 땜에 짜증이 났다. 며칠 불편한 티를 팍팍 냈는데 이러다 너 땜에 불편해서 여행을 못하겠다고 으름장이라도 놓아야겠다 싶다.ㅡㅡ+ 
  이링가로 출발. 바오밥 나무를 떼로 보게 되는 날이다. 식빵 한 쪽에 망고 한 쪽. 간단히 아침을 먹고 메뚜기에 올랐다. 어제 그나마 정로환을 먹고 잤더니 속은 많이 편해졌다. 가는 내내 잠만 쿨쿨. 어젯밤 추워서 좀 설쳤더니 피곤했나보다. 이링가로 접어드니 길가에 바오밥 나무들이 천지다. 브로콜리 밭처럼 생긴. "바오밥 나무~ 밥이 열린다면~ 엄마는 저녁밥을 안 해도 되네~" 하림이 만든 <바오밥 나무> 노래가 절로 나온다.  용이가 아파서 자리를 옮겼더니 여몽과 늘, 유이와 마주 앉아 산티아고, 환경과 생태에 관한 이야기를 무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300년 된 바오밥 나무를 만났는데 어린왕자에 등장해도 될 법한 그 커다란 나무 아래서 반작이는 햇살도 보고 따뜻한 숨결도 느끼고 생전 처음보는 바오밥 나무의 열매도 보고 마냥 즐거웠다.



  지금은 사람들이 부시탐험을 떠나 조용한 메뚜기 안이다. 오랜만에 메뚜기가 낮잠을 잔다. 덤불숲을 헤치고 가는 부시워킹을 갈까 싶기도 했으나 몸상태도 좋지 않고 별 거 있겠어? 하는 마음에 차라리 이렇게 오롯이 시간 안에 앉아 일기나 쓰자 싶었던 거다. 나는 일기를 쓰고 밖에선 까무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호프의 초보 기타소리가 도레미파솔라시도 들리고 용이의 웃음소리 조용하다. 그나저나 내 운동화는 어디로 사라진 건지.. 잔지바르 3일 돌다가 메뚜기로 왔더니 운동화가 사라졌다. 분명히 내 자리에 두었는데 차 안을 이잡듯 뒤져도 없다. 젠장.ㅜ
  차 안에 있다 심심해서 내려가 동네 아이들과 아줌마를 만났다. 올리바, 투마이니, 그리고 남자아이들. 올리바란 여자아이는 영민하고 예쁘고 수줍은, 그리고 당당한 아프리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풍선이 있어서 풍선 던지기도 하고 불어서 바람에 날리기도 하고 좀더 즐겁게 어울릴 수 있었다. 그리고 승달이에게 배운 우클렐레와 잠시 동안의 젬베, 그냥 좋은 시간들이었다.


  저녁, 지금까지는 가장 이른 시간에 캠프에 도착했다. 캠프장 분위기도 좋고 빨래터와 샤워장, 화장실 구분에 따뜻한 물도 펑펑 나오는 지금까지 중 최고의 캠프장이다. 와우. 오랜만에 밀린 빨래도 하고 깨끗이 씻고 저녁을 먹는데 속이 안 좋은데도 열심히 먹었더니 체기까지 더해진 듯하다. 내일부턴 양을 최소한으로 줄여야겠다. 아프리카에 와서 오히려 육식이 늘어 속이 말썽인 듯하다. 저녁에 남은 실링으로 맥주를 하고 싶었으나 속이 엉망인지라 참고, 사람들에게 맥주며 콜라를 헌사. 밤늦게 오랜만에 모여앉아 이런저런 노래를 부르며 쏟아지는 은하수 아래 멋진 밤을 보냈다. 아, 좋다.

Posted by 비단구두
l

  오늘은 액티비티 투어가 있는 날. 사람들은 낚시에 스노쿨링에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하겠다고 어제부터 들떠있다. 난? 배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장도 안 좋아 포기. 스쿠버 다이빙을 할 기회를 또 놓쳤다. 오늘은 그냥 하루종일 컨디션 회복 위해 뒹굴거리기 코스로 결정. 느지막히 일어나 시집 좀 읽다가 남지랑 바닷가에 나가 조개 몇 개 줍다가 해변 근처 가게나 어슬렁거렸다. 



  그 중 아프리카 화풍의 팅가팅가 가게를 지나왔는데 그림 그리는 청년이 곧 그릴 채비를 하길래 예술이 탄생되는 광경을 지켜보기로 했다. 별 거 아닌 쇠주걱과 몇 개 되지도 않는 물감, 대단할 거 없는 천으로 된 캔버스에 쓱쓱 선을 긋고 문질러 마사이도 그리고 동물들도 그리는 그가 신기했다. 그러다 주변에 있던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한참 잘 나가다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한 마디가 툭, 던져졌다. "한국에서 여기 오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들어?, 한 1000달러?" 휴.. 그걸 묻다니. 환전한 예비비만 1000달러였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씁쓸한 질문이라니. 그냥 "5000달러 쯤."이라고 깎아 말했는데도 놀라는 그들을 보면서 괜스레 미안해졌다. 열심히 일해야 하루 2~3달러 버는 그들과 우리가 사는 게 너무 다르다는. 내가 아프리카의 자연과 순수한 사람들을 만나러 온 거라고 아무리 말한다해도 나도 결국 그들을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대상으로 맞닥드릴 수밖에 없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씁쓸한.

  점심은 노인과 바다를 체험하고 돌아온 바람님 팀의 대형물고기로 먹기로 했다. 원래 남지와 까무와 식사를 하려했으나 일행을 놓쳐서 낚시팀도 아니었던 내가 생선파티에 깍두기로 끼게 된 거다. 사실 예쁜 빛깔의 그 물고기를 몽둥이로 때려잡았다는 게 찜찜해서 먹지 않으려 했지만, 바람님께도 맥주도 얻어먹었는데 또 식사를 신세진다는 것도 맘에 걸렸지만 혼자 밥을 먹기는 싫었다. 그래서 회는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자꾸 물고기에게 미안하고, 그래서인지 속은 더 안 좋아졌다.

  저녁 때는 다시 잔지바르의 원래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하림과 함께 젬베를 사러 나갔다. 얼마나 갖고 싶었던 젬베인가. 더구나 하림이 골라준..ㅋㅋ 열심히 배워서 나도 따슬이처럼 젬베와 친해져야겠다. 아직 '둥'을 치는 것조차 어렵지만.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잔지바 피자를 사러 나갔다나 쭈와 호프와 1잔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들과 합석. 용, 승달, 따슬이와 함께 우리나라 치킨호프집 같은 분위기의 가게에서 술을 먹었다. 여러가지 속이야기를 하진 못해서 아쉬웠지만 몇몇이서 술자리, 오랜만에 좋다.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오늘은 페리타고 메뚜기로 돌아가는 날. 늦게 갔다간 점심 때가 돼서 도착할 수도 있다는 말에 밥도 겨우 먹고 달라달라를 타고 선착장 도착. 그런데.. 페리가 연착이란다. 무려 9시에 온다는 ㅡㅡ" 이렇게 늦을 거였으면 잠이나 잘 걸...ㅠㅜ 덕분에 어제 산 젬베 연습을 선착장에서 했다. 오늘 배운 건 카라반 비트. 일명 중동비트라고 하는. 하림 선생님께 따슬이와 열심히 배웠는데 어려웠다. 연습이 필요해..


  그나저나 점심 이후부터 제대로 속이 이상하다. 아침에도 약간 설사 증세가 보이더니 마구 아프기 시작이다. 여몽이 정로환을 가지고 있던 덕에 한시름 놨지만 여전히 살살..ㅜㅜ
  하루종일 차만 탔는데도 메뚜기가 제일 편하다는 걸 절감하는 날이다. 선착장에 세워진 게 달라달라가 아니라 메뚜기라는 게 얼마나 감사했던지.
 
  그나저나 젬베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따슬이, 용, 모자는 이미 드럼을 배워놔서 남다르고 거기에 감각 좋은 승달이까지. 잘치는 아이들이 많으니 괜히 주눅이 든다. 안 그래야지 하는데도.

Posted by 비단구두
l

  어젯밤에 늦게 잤는데 일찍 눈이 떠졌다. 핸드폰 문자가 보내지길래 연락을 했는데 범다영이에게 문자가 와 있다. 오~ 출발이 좋은데? 오늘은 드디어 잔지바르로 가는 날! 스톤타운과 잔지바르의 화려한 색채가 마음을 들뜨게 한다. 3일치 짐을 꾸려서 배에 올랐다. 아프리카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우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 사람들은 우리를 구경하고.ㅎ 레게머리를 한 아이, 헤나를 한 여인, 히잡과 차도르를 쓴 사람들. 그리고 아랍쪽의 얼굴이 섞인 검은 피부의 사람들. 이런 풍경을 보면서 아프리카와 아랍이 만났던 잔지바르로 가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컨디션은 메롱.


  잔지바르 도착이다. 돌로 된 건물들, 처음보는 해안시장, 바다냄새. 다른 느낌이 좋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잔지바르의 3일은 자유다. 트럭투어가 아닌 우리가 정한 여행루트와 숙소, 식사. 새로운 여행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다. 일단은 늦게 도착해서 대강 들어간 집. 흩어져 먹으려 했으나 예뚜 식구들이 다 같이 먹기로 찬성. 우리는 너무 하나다.ㅋㅋ 참치와 볶음밥을 시켰는데 스파이시는 안 된단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참치가 완전 질겼다. 암튼 열심히 밥을 먹고 남지와 까무와 방에서 할래할래 쉬었다. 그런데 밖에서 들려오는 포크레인으로 땅을 뚫는 듯한 소리. 그러고보니 이 동네 도착해서부터 계속 들리는 소리다. 잘 사는 동네라 집집마다 공사를 하나 했더니, 집집마다 발전기 모터 도는 소리린다. 트럭투어만 하던 우리라 잠시 잊었던 아프리카의 현실. 전기가 귀하다는. 이렇게 해서 해질녘까지 전기를 쓰고 밤이면 뚝 끊긴단다. 



  자유여행의 기치와는 달리 또다시 모두가 함께 하기로 한 1일 투어에 참여했다. 오늘의 투어는 역사&향신료 투어. 달라달라를 타고 잔지바를 한 바퀴 도는 코스란다. 먼저는 잔지바르의 가장 큰 노예시장이었던 성공회 교회에 들렀다. 교회 건물이 크고 웅장하면서도 자연에 있는 것처럼 멋졌는데 그 안으로 들어서자 현지인은 아무도 없고 관광객들 뿐..ㅜ 리빙스턴 박사의 탄원으로 노예시장이 문을 닫기까지 엄청나게 번성했다는 이 곳. 수많은 노예들의 피가 뿌려진 곳이다. 노예들을 때려서 울지 않는 노예는 더 비싼 값을 메기고 여자들은 생산능력에 따라 돈을 더 쳐주었다고 한다. 건물 밖으로 나가자 당시 노예시장을 옮겨 놓은 듯한 동상을 보게 됐다. 쇠사슬을 목에 묶고 짐승처럼 취급받고 값매겨졌던. 보통 7년밖에 살지 못할 만큼 몸도 마음도 삶의 의지가 꺾여버린 이들의 영혼이 느껴졌다.
  자신들을 노예로 만들었던 이들이 믿었던 종교를 받아들여 그 아픔을 치유하고 다시 살기 위해 믿음을 가졌던 이들. 스페인 여행 중에도 느꼈지만 종교가 아픔을 치유한다는 것은 꾸며진 건지도 모른다. 힘든 사람들이 극한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 신기루처럼 만들어낸 것, 현실을 이기기 위해 믿는 종교가 전파한 이들에게 문화까지도 복종하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그런데도 다시 살고, 남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색깔로 녹여내는 그들이 더 놀랍기도 하고. 암튼 마음이 복잡해지는 순간이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향신료 농장. 생전 처음 보는 아말감 맛이 나는 향신료와 뿌리부터 확 끼쳐오는 진한 향에 금세 노란물을 들이는 생강. 그리고 열매에서 샛주홍을 뽑아내 여자들의 연지로 쓰였다는 염료, 나무가 다 마른 뒤에서 진한 향을 뿜어내는 계피, 평함한 풀처럼 보이는데 조금만 비벼도 향을 피워내는 레몬그라스, 처음엔 풀색이었다가 익을수록 검정이 되는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인 후추, 그리고 패션 푸르츠부터 처음 맛보는 이름모를 과일들.
 

  저녁이 되어 야시장이 열린다는 말을 듣고 허기졌던 우리는 구경을 나갔다. 잔지바 피자와 사탕수수 주스는 정말 맛이 최고!!
  그리고 우연히 만난 하림의 팬 덕에 하림이랑 둘이 듀엣으로 아프리카 노래를 할 기회가 왔다는..ㅋㅋ 행복한 밤이다. 그러나 승달이의 담배부터 어색한 장면을 보게 되는 바람에 뭔가 불편해지는 밤이 되어버렸다.



  다음날.
  오늘은 까무와 남지와 한 방에서 눈을 떴다. 늦게 일어나도 된다는 말에 슬근슬근 일어나 아침내 수다를 덜다가 아침식사도 늦었다.ㅋ 토스트와 계란, 홍차로 아침을 먹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유네스코 문화유산, 스톤타운을 구경하러 나섰다. 함께 한 식구들은 남지, 까무, 유이, 여몽, 어딘. 여섯 여자가 유이를 필두로 작은 지도 하나에 의존해서 스톤타운 골목골목을 쏘다녔다. 지금까지의 아프리카에서 보기 힘든 풍경들에 내 눈이 즐거워진다. 더욱이 이런 골목길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더욱. 돌바닥, 좁디좁은 골목에 즐비한 상점들, 어디선가 풍겨오는 수수께기같은 냄새들, 숨바꼭질하듯 골목 여기저기서 내미는 아랍 또는 아프리카의 얼굴들. 나도 그들과 함께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
  그 골목의 한 상점에서 우리는 단체로 스카프를 샀다. 유이와 여몽은 세트같은 치마도 샀는데 유이가 그 집에 옷을 두고 와 돌아갔더니 그 때가 이슬람 기도시간이었다. 덕분에 골목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아 주인을 기다리는데 조용히 그 시간 속에 앉아 있는 기분. 기도시간이라 여기저기 동시에 갑자기 문을 닫은 상점들 사이에 가만 앉아 있으니 그냥 편안하다. 남지의 그림 그리는 풍경과 조곤조곤 들려오는 우리들의 목소리만 허공에 머문다.








  옷을 찾아들고 다시 스톤타운 돌기 시작! 그러나 잘못 먹은 비타민 때문에 내 컨디션은 더 엉망이 되어갔다. 지칠 대로 지쳐서 배도 고파서 찾은 멋진 레스토랑이 화장실은 엉망. 암튼, 숙소로 돌아와 조용히 쉬었다.

  오후에는 북부로 이동이다. 거기 바다가 예뻐서 액티비티를 하기가 좋단다. 도착은 저녁이 다 돼서야 했는데 사방이 캄캄. 여기는 발전기 소리가 안 나서 좋다 했더니 반대로 완전히 밤이 되어야만 전기가 들어온단다. 게다가 물도 쫄쫄이다. 물도 전기도 서양 관광객들 좋으라고 한데 모아놓은 캠핑장과는 영 다르다. 아프리카 속으로 한 발 더 들어온 느낌. 그나마도 여행지인 잔지바르고 잘 사는 동네인데도 이렇다. 돈 내고 왔는데 숙소가 어떻게 투덜댔던 며칠 전의 내가 그 속좁음과 편견이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저녁이 돼서 피자와 맥주를 시켜 먹었다. 와우, 식사는 최고. 맛있다! 그런데 차디찬 맥주를 밤마다 먹어서인지 속이 좀 이상했다. 그렇잖아도 컨디션도 아닌데 얼른 밥을 먹고 숙소로 먼저 돌아왔다. 여몽과 함께 랜턴을 켜고 어둠 속을 걸어서. 그런데 오마갓.. 방향치인 내가 처음 온 곳을 그것도 깜깜하기만 했던 숙소를, 지금도 깜깜한 속에서 어떻게 찾겠냐고요. 결국 숙소 키 보여주면서 다른 숙소에 들어가 묻고 물어서, 지나가던 마사이 청년의 도움을 받아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밤까지도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Posted by 비단구두
l

  후두둑, 빗소리에 눈을 떴다. 잠시 후, 갑자기 짐을 꾸려 빨리 텐트 밖으로 나오라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물난리가 난 거다. 어젯밤 하림의 선창으로 모두가 한마음으로 불렀던 Rain, Rain, Rain, Beautiful Rain을 너무 열심히 불러서 하늘에 그 뜻이 팍팍 전해진 모양이다. 게다가 따슬이의 "Oh Come~" 소리는 너무나 간절했다. 내가 하늘이라도 비를 내리겠다 했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완전 홍수다. 캠프 사이트 바로 모든 짐을 다 옮기고 보니 머리는 산발에 비옷 위로도 빗물이 뚝뚝 떨어져 스밀 지경이다. 발도 아예 진흙으로 뒤범벅이고. 그래도 우리는 이 와중에 아프리카에서 웬일이냐며 단체사진을 찍었다.ㅋ 그나마 다행히 큰물은 아니어서 점점 잦아들어 텐트 위까지 물이 차오르지 않고 차도 엔진은 멀쩡하단다. 휴~ 오늘은 다르에살람으로 출발할 수 있겠다. 고고씽!
  그런데 이런 닌장...ㅠ 질퍽한 발로 텐트며 짐을 메뚜기로 나르던 중 진흙에 발이 빠져 쪼리가 고장났다. 한 발을 맨발로 다녀야 하다닛..ㅡㅡ 비에 좀 젖은 운동화는 불 피우고 난 숯에 거의 굽다시피 했는데도 마를 생각을 않는데..ㅜ 다행히도 유이가 아쿠아 슈즈를 빌려주어 살았다. 난 왜 이리 우여곡절이 많다니. 



  
  다음날.
  오랜만에 텐트가 아닌 침대에서 눈을 떴다. 위에는 승달이. 오늘은 다르에살람이다. 템보를 떠나오면서 만난 창밖의 아이들은 유난히 착한 눈을 가졌다. 정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반갑고 신기하다는 맑은 눈. 그리고 바오밥 나무, 바오밥 나무, 바오밥 나무.. 바오밥 나무들이 많다. 땅 자체가 순한가? 또 다 쓴 후에 땅에 묻히는 친환경 가방을 만들어 쓴다는 용설란도 보인다. 그리고 아프리카 사진마다 나오는 진한 주홍빛 꽃망울을 터뜨리는 파이어트리. 이름도 어쩜. 오늘은 간만에 쨍한 볕이 반짝이다. 어젠 언제 그랬냐는 듯. 간만에 하늘도 제 얼굴빛을 찾아간다.

  중간에 잠시 들른 시장. 물이랑 음료수, 파인애플, 캐슈넛을 사고 큰 배낭 쌀 비닐이랑 쪼리도 샀다. 특템은 역시 쪼리!! 1000원짜리가 꽤 쓸 만하다. 새것으로 갈아신고 다시 열심히 메뚜기를 달려 키페포(나비)해변에 도착했다. 이름만큼이나 해변은 예쁘고 인도양의 파도소리가 쏴아 들리는. 그리고 샤워장이랑 화장실도 굿이다. 이런 곳에선 텐트 칠 만하겠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나저나 JT마저 나에게 장난을 시작했다. 예뚜 식구들이야 텐트에 올 때마다 헤매는 나를 봐서 내 방향감각은 익히 알았다지만 JT까지야.. 내가 방향치라는 걸 알고 이상한 길을 두 번이나 알려줘 헤매게 만들었다. 그리고 공지사항 알릴 때에도 나한테만 제대로 들었냐고 두 번 세 번 확인을..ㅡㅡ 내가 다 드러난 거 같아 민망하다.

  저녁에는 유이, 까무, 남지와 앉아 있다 여자들, 언니들 이야기를 같이 하려고 차를 마시고 있다가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매일 먹다시피 하는 맥주지만 언니들이랑은 또 다르니까.ㅎㅎ 카메라 충전을 맡기고 바에 갔더니 웬 와인? 유이가 쐈다는 진주만. 이름도 참. 암튼 언니들이랑 진주만을 홀짝이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사람들이 다 오고 하림도 와서 또 다시 우리들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하림이 만든 아프리카 노래란 노래는 다 하고.. 하림 노래도 하고. 예쁜 시간이었지만 애초 의도대로 언니들이랑 오붓하게 있고 싶던 나는 자리가 살짝 불편했다. 가끔 여럿이 불편하다.
  그래서 중하와 헤모에게 갔다. 중하랑 헤모랑 꿈 이야기, 만화 이야기, 좋아하는 것들 이야기.. 주절주절했더니 기분이 좀 좋아졌다. 그런데 시간이 늦어졌는데 중하랑 헤모 데리고 계속 이야기 한다고 어딘 목소리가 좀 높아졌다. 잔지바에 오면서 이것저것 귀찮게 묻기도 했는데 어른답지 못하다는 꾸중을 듣는 거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여행이 또 어려워질까 두렵다. 전체를 책임지는 어딘이라 더욱. 첫인상이 제일 좋았던 어딘이 이젠 불편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리고 이런 일에 연연해하는 내가 더 싫다. 몸상태도 좋지 않다. 가지가지 하는군..ㅡㅡ"

   
 
Posted by 비단구두
l

  아침에 고프리 아저씨를 만나 세렝게티로 향했다. 우리 모둠은 야리가 빠지고 오늘은 여몽이 함께다. 안개가 자욱히 낀 신비로운 숲을 지났다. 어디선가 숲의 정령들이 나타나 춤을 추고 노래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그러다 그 노래소리에 홀려 가면 영영 돌아오기 힘든?^^ 어느새 응고롱고로 게이트에 도착. 그런데 갑자기 도적이 나타났다. 원숭이 세계의 깡패, 바분원숭이. 옆의 차에 쭈가 바나나 송이를 놔 두고 창문을 열고 내린 모양이다. 그 틈으로 냉큼 들어가 훔쳐와 놓고는 자기 것 먹는 양 당당하게 우리 앞에서 바나나 껍질을 벗긴다. 어찌나 욕심도 많은지 동무들이 달라고 모여들자 때리고는 혼자만. 무식한 녀석. 고프리 아저씨 말로는 그런 무뢰배같은 놈이라도 그냥 두어야 한단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사람도 흠씬 두들겨 맞는다는. 진짜 깡패같은 놈이다.


  암튼, 응고롱고로 진입! 응고롱고로에 도착하자 우리를 반긴 건 섹시한 얼룩말들의 엉덩이와 노신사의 얼굴을 한 누의 얼굴. 그런 신기한 동물들이 화산으로 생긴 분화구 위에 산다니. 역시 경이로운 아프리카다. 화산이 폭발했던 분화구, 그 불모의 땅 위에 겹겹의 시간이 쌓이고 어느샌가 푸른 초원으로 변하고 그 거대한 구덩이 가운데 우기가 되면 알아서 물이 고인단다. 그리고 그 물을 찾아 이렇게 많은 동물들이 모여든다는. 


  암튼 오전 10시 정도가 되도록 버팔로에 얼룩말, 누떼, 흑멧돼지 가족, 가젤들, 어찌나 많은 동물들을 보았는지 하나도 빼놓지 않으려고 카메라 셔터를 부지런히 눌러댔더니 금세 배가 고팠다. 처음으로 나의 비상식량 쪼꼬바를 먹었다. 내 맘에 제일 들었던 동물은 당연 얼룩말! 초롱초롱 까만 눈과 의외로 귀여운 사이즈, 선명한 줄무늬가 초록 배경에 딱 띄는 생기발랄함이 정말 예뻤다. 게다가 얼룩말은 똑똑하고 기억력이 좋아서 누떼들을 데리고 응고롱고로에서 세렝게티까지 가는 행렬을 이끈단다. 사파리차의 뚜껑을 따고 위로 올라가 바람을 느끼고 야생동물을 가까이서 두 눈으로 확인하는 그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밀림의 왕 사자는 좀 게을러보였지만 동물원에선 초라해보이던 코끼리는 정말로 위풍당당. 남의 사냥감 뒤처리 전문 하이에나는 의외로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마는 호숫가에서 코만 내밀고 숨만 쉬느라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밤이 되어야 나온단다.







  호숫가에선 빵과 주스가 들어있는 점심도시락을 먹었는데 소풍나온 기분이어선지 한국 김밥이 너무 그리웠다. 쑤의 "김밥이었음 좋겠다" 한 마디에 어딘의 뻥이 시작되었는데.. "우리팀은 김밥 먹었는데 너흰 뭐 먹었어?"로 시작된 농담이 급기야는 "우린 참치김밥 너희는 그냥 야채김밥이야?"가 되면서 따슬이까지 서슴없이 뻥을 치고, 한쪽에선 우리가 먹은 치킨이 타조고기라는 말까지 오갔다.ㅋㅋ



  오후에는 비가 너무 쏟아졌다. 우리가 사자를 찾아 초원을 헤매는 동안 갑자기 비가 몰려와 물이 불었다. 다음 캠프로 이동해야 하는데 물이 불어 도랑이 큰 개울이 되고 차 엔진이 물에 잠겨 앞서 간 차들이 멈춰섰다. 마사이 청년 하나는 길을 가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고 한다. 우리도 빗속에 한참을 기다려 잦아든 후에야 차를 움직여 세렝게티 쪽으로 갈 수 있었다. 가는 길에는 레오파드, 표범을 만났는데 날도 어두워지고, 녀석이 겁이 많아 나무에만 있어서 보기 어려웠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야리와 후다닥 완벽히 텐트를 정리했다. 얏호!! 이제 텐트도 완전 적응이닷. 텐트 안에서 느리작대느라 아침을 부실하게 먹긴 했지만 오늘은 본격 세렝게티. 열심히 차를 달려 어젯밤 우리가 표범을 보았던 나무에 다시 오니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녀석. 표범이 우리 차 쪽으로 유유히 걸어오는가 싶더니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나무로 다시 고개를 돌리니 앗, 갸르릉 거리며 새끼가! 오홋 귀엽다~~ 근데 짠하게 나무 위에서 바들 떨고 있는. 잠시 후 반대편 나무에 어미 등장! 자기 몸집만한 임팔라의 시체를 등에 지고 오는 게 아닌가. 나무 위에서 식사를 하는가 싶더니 나무 위에 빨랫감처럼 몸을 뉘이고 늘어진다. 아, 먹고 자고 좋겠다.. 했더니 연기? 우리가 새끼 쪽으로 눈을 돌리자 불안한 듯 다시 몸을 세운다. 그리고 불안한 듯 나무 위를 서성인다. 새끼는 계속 갸르릉 거리고.. 훔.. 미안한 생각이 든다. 맘편히 나무 위에서 사냥하고 새끼를 먹이고 서로 정을 나누어야 할 평온한 아침 식탁에 불청객으로 우리가 끼어든 느낌. 게다가 둘 사이엔 사파리 차량들이 바리케이트를 친 상황이다. 안타까운 둘 사이를 자꾸 갈라놓는 것 같아 차를 돌렸다. 새끼가 어미 품에서 따끈한 아침식사를 하기를 바라며. 
  잠시 후 평원에서 만난 장면은 거의 다큐 드라마였다. 암사자들이 사냥을 마치고(물소처럼 큰 놈이었다) 식사를 하고 나자, 망을 보던 숫사자들이 다음 순서로 식사를 한다. 그러곤 잠시 뒤 자칼이 나타나 사자의 비호 아래 남은 음식을 먹는 거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미스터 음식처리반 하이에나들은 먼 발치에서 조용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가 살금살금 다가간다. 어느새 근처까지 가서 먹고 남은 음식을 노리는데, 그 순간 숫사자들이 나타나 으르릉 내쫓는다. 알고보니, 하이에나는 사냥의 명수란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는. 체력을 아낀다나? 심지어 사자가 늙고 병들면 사자를 사냥해서 먹는 게 하이에나이기 때문에 사자와 사이가 나쁘단다. 움.. 이런 의외의 먹이 피라미드가. 암튼, 녀석 참 편하게 산다. 귀여운 외모와 달리 찌질하다기보단 철처히 계산적이고 무서운 놈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후에는 세렝게티를 떠나오면서 마사이 마을을 들렀다. 아이러니하게도 동물 보호구역에 갇혀 보호가 아닌 감시를 받고 있는. 그래서 전처럼 유목은 물론이고 사냥도 못하고 관광 상품이 되어 부족의 전통마저도 위협받고 있는. 그나마 관광객이라도 받지 않으면 물을 사먹고 부족을 유지할 길이 없다고 한다. 
  마을에 들어서자 환영인사로 남녀가 노래를 하고 춤을 춘다. 여자들은 반원으로 서서 우리에게 마사이 목걸이를 걸어주고 손을 잡고 춤을 추며 아프리카 소울이 가득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남자들은 마사이의 전통이라는 제자리 높이뛰기를 보여주었는데, 높이 뛰는 사람이 가장 용맹한 전사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널도 없이 널뛰기를 하는 듯한, 스카이콩콩을 자체장착한 듯한 높이 뛰기가 마냥 신기했다. 
  조금 있으니 비가 쏟아지고 우리는 마사이 전통 가옥 안으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밖은 추운데 안에는 하루 종일 숯불을 피워 따뜻하다 못해 덥다. 두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불이 피워진 공간이 부엌, 동물 가죽이 깔려진 곳이 침실이란다. 좁고 불편하고 뭐 이게 집이야, 할 수도 있겠지만 유목을 하기 위해 고작 해야 몇 주 머무르기 위해 몸을 뉘일 곳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마사이들의 문화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우리는 떠돌지 않기 위해 한 곳에 붙박히기 위해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너무 많은 것들을 소비하고 버리고 있는 게 아닐까. 
   좀처럼 비가 잦아들지 않고, 마을을 둘러보기로 한 시간은 거의 다 돼서 마사이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만 마을을 나서야 했다. 날이 맑아서 좀더 많은 마사이들을 만나고 함께 춤추고 공예품도 더 사고 했으면 좋았으련만. 날이 심술궂다.
    






 
Posted by 비단구두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