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너무 따뜻한 침낭 때문에 땀 흘리며 자다 일어나니 6시 반. 생각보다 예뚜 식구들이 일찍 일어나 아침을 맞고 있었다. 얼른 씻고 식사. 식빵에 치즈와 딸기잼을 함께 발라 열심히 먹고 곡물을 으깨놓은 듯한 멀건 선식같은 시리얼도 다 먹었다. 계란 오믈렛에 후추 잔뜩 소세지, 그리고 스파게티 묽은 국물같은 스프까지.
  오늘은 케냐를 떠나 탄자니아의 아루샤까지 달리고 또 달리는 날. 아침부터 메뚜기에 올라타 오늘은 사진찍기 좋은 창가를 선점하고 셔터를 열심히 눌러댔다. 여기저기서 잠보!를 외치는 아이들, 마사이 원주민, 독특한 머리모양의 언니들, 자줏빛 교복을 입은 아이들까지. 


  그러다보니 어느덧 점심시간. 케냐 마사이 박물관엘 잠시 들러 점심을 먹었다. 사실 박물관이 아닐라 조그만 상점 같은 곳이라 물건들보단 헨리의 샌드위치가, 하림의 노랫소리가 더 마음을 끌었다. 그리고 우리 치타팀이 처음 맡은 일은 의자놓기. 열심히 의자를 내려놓고 3단계 대야 손씻기로 손을 씻은 후, 밥을 먹었다. 이상한 환타 색깔 싸구려 주스는 별로였지만 파인애플은 환상. 그리고 휴식 중에 하림 노래를!


  오늘의 목적! 아루샤에 도착. 지구의 역사를 또 만났다. 아프리카 대지구대. 원래는 하나의 산맥이었던 것이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맨틀의 대류와 지각변동으로 헤어져 평원을 만들게 됐다는 거다. 언젠가 이곳에 물이 고여 호수가 되고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아프리카해라는 이름의 바다를 이룰 거란다. 놀라운 지구의 신비.


  그리고 케냐에서 탄자니아로 만나는 동안 만난 마사이들은 인류의 시원과 닮아있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침낭을 준비해 온 추위를 마사이 망토 하나로 버텨내면서 전통을 지켜오고 있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저들의 삶을 관광상품으로 카메라에 담고 있다는 게 미안했다. 나도 그러고 있다는 게. 세렝게티가 국립공원이 되기 전 유목을 하고 자유롭게 살았던 마사이를 구역에 묶어 두고 관광객을 위한 돈벌이로, 기생하는 삶으로 바꾸어버린 자본이 무섭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지금의 아프리카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의 순수, 역사, 오랜 과거가 고스란히 살아있다는 것이 그들을 누르고 함부로 대하는 이유가 되어 버린 건지도 모르는.
  탄자니아로 진입해서 한참을 달리는 동안 만난 또 하나의 풍경은 수도 아루샤의 잘 사는 사람들이었다. 농사를 짓고, 닭을 키우고, 자전거를 몰고, 심지어 비싼 외제차도 집집마다 들여놓은. 이렇게 서로 다른 아프리카가 공존하고 있다니.
  그리고 원래 척박하고 거친 줄로만 알았던 아프리카가 우기에는 이렇게 푸른 초원과 대지와 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 차를 타는 동안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고, 신기하게도 쏴아-- 뚝. 바깥의 풀들은 물기를 머금고 지구상 어느 곳의 풀, 나무보다 더 선명한 초록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목마름을 한번에 해결하려는 듯이. 경이의 땅.
  밤에는 어제에 이어 별자리 공부를 계속했다. 오늘 만난 건 노인성과 마젤란 은하. 노인성을 보면 장수한다는 말이 있다는데 '노인성'이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과 달리 너무 초롱초롱 빛나고 있어 신기했다. 나도 오래살겠다. 별론데^^;; 그리고, 진짜는 나의 마젤란 은하. 은하수 근처에 있었는데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외계 은하란다. 외계라닛!! 어쩜 나의 진짜 고향인지도 모른다. 저기서 나의 동족들이 날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련하구나. 마젤란.



  다음날.
  아침 5시 쯤? 옆에 외국인 언니들 블라블라 소리에 잠을 깼다. 일어날까 하다가 너무 이르다 싶어서 그냥 편이 엎어져 있는데 슬금슬금 여섯 시. 안 되겠다 싶어 독서등을 켜고 어제 지나간 일기를 썼다. 후회 ㅠㅜ. 잠깐 잠깐 사이마다 안 썼더니 기억이 뒤죽박죽, 한꺼번에 쓰려니 자잘한 기억들이 묻히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쉬는 시간마다가, 덜컹이는 메뚜기 안에서도 끄적이기로 했다. 일기를 마무리하다간 씻질 못할 것 같아 간단한 메모만 하고 일어났다. 텐트 안은 깜깜한데 밖은 환하게 밝다니. 이런.
  일어나 후레이크와 빵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오늘 떠날 사파리용 짐을 따로 챙겼다. 그러고 있는데 스네이크 박물관엘 간다는.. 덕분에 챙겼던 빨랫감을 던져 두고 뱀친구들을 만났다. 가장 귀여웠던 건 마스카라 도마뱀하고 모모에 나오는 토라박사처럼 생긴 거북이.ㅋㅋ 악어도 만나고.
  후다닥 돌아와 빨래를 하는데 누군가 "날범?" 하는 소리가 들렸다. 환전 하러 아루샤 시내로 가려고 버스 대기 중이란다. 빨래 후다닥 널고 차에 타니 맨 앞 햇볕 쨍쨍 자리만.ㅠ 그래도 덕분에 킬리만자로 다음이라는 메로산의 구름에 덮힌 얼굴을 가장 먼저 볼 수 있었다.




  아루샤 시내 도착. 드디어 아프리카에 와서 처음 환전이다. 탄자니아 실링은 1USD=1300실링. 와우, 우리나라 돈보다 비싸다. 누가 물가 싸댔어! 암튼 100달러를 바꾸고 나니 뭔가 부자된 기분이다.ㅋㅋ 아예 물건 사러 마트부터 들렀다. 내가 사랑하는 파인애플과 나랑하주스! 토마토와 맥주를 사니 800실링..ㅠ 진짜 물가가 장난아니다. 5000원 하는 오렌지는 손도 못댔다.
  잠시 뒤에 들른 재래시장. 헤모와 중하가 모자 사러 갔다가 혼쭐난 시장에 단체로 입성했다. 처음으로 자연스런 도찰. 그래도 시장의 흥성거림과 살아있는 삶의 현장을 가까이서 만나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가장 귀여운 표정의 아프리카 아가를 카메라에 담았다. 엄마 등에 업혀있는. 빼곰히 내민 눈이 얼마나 예쁘던지. 그나저나 캠프 안 잠바에 놓고 온 지갑과 카드가 불안하다..ㅜㅜ 난 왜 이러는 것이야. 서둘러 돌아온 캠프장에 무사히..ㅎㅎ!
  점심은 마카로니 샐러드와 햄과 빵이다. 파인애플을 열심히 먹고 또 해바라기 설거지를 하고, 까작까작 마른 빨래들을 챙겨 짐을 꾸렸다. ㅠㅠ 더러워진 잠바를 이제야 주머니에 넣을 생각을 하다니. 하여튼. 텐트 개고 준비해서 어서 응고롱고로로!!
 



  모둠별로 한 차를 타게 되었는데 우리 치타 모둠은 완전 친절하게 생긴 아저씨를 만났다. 게다가 천장이 뻥뻥 뚫리는 차라니..ㅋㅋ 우리 모둠인 쑤, 늘, 나, 어딘, 그리고 호프와 야리가 한 차를 탔다. 지나는 길에는 마사이마라를 지나면서 다시 많은 마사이들을 만났다. 중간에 웃통을 벗은 마사이 청년들을 보았는데 노동으로 다져진 근육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마냐라 호수. 아프리카가 이런 푸른초원에서 정글로 이어진다는 것도 신기한데 그런 속에 저렇게 큰 물이 숨어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 오늘 내 생애 처음으로 바오밥 나무를 만났다. 어느 겨울, 어린왕자 연극을 통해 그림자로 만났던 나의 어린왕자가 저 바오밥 나무 아래에서 사막여우와 인사를 나누었을 거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었다. 


  다시 달리는 차. 한참을 달려 캠프장에 도착했다. 마을과 인접한 아담한 캠프장이 참 마음에 들었다. 안마당이 다 우리 차지. 오늘도 둥글게 둥글게 텐트를 치고 마실을 나갔다. 마을을 걸으면서 사람들하고 인사도 하고 사진도 찍는데 동네 아이 셋이 나타나(찰스, 제프리, 제프리의 동생) 우리 옆에 찰싹 붙는다. 나도 제프리와 통성명도 하고 응고롱고로 이야기를 했다. 사실 나는 비겁하게도 한 발 비켜 제프리를 만났다. 제프리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른 일행이 보이지 않았다. 당황하고 있는데 제프리와 친구들이 앞서간 식구들의 위치를 알려주고 친근하게 구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나도 이름을 알려주어야겠다 생각했는데, "한국에서 왔어요? 볼펜은 없어요? 나 학교에 가야 하는데 1달러만 주면 나눠 쓸테니 주세요." 등의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툭 내려앉았다. 내 이름을 말해주어야겠단 생각도 쏙 들어가고. "친구하자는 거 아니었어?"라고 물었더니 뭔가 시큰둥한 반응들이다. 그 말을 하고 보니 나도 이름도 선뜻 말하지 못해놓고 웬 친구인가 싶어 내가 뱉은 말도 맘에 들지 않았다. 이런.. 이런 인간관계 정말 별로다.
  결국 헤모가 가진 새콤달콤으로 끝내고 마려는데 안재성 선생님이 "우리도 미군에게 초콜릿도 받아먹고 달러도 받았는데 자존감 없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반미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데?"라고 이야기하시는 게 아닌가. 혼란스러웠다. 나는 자존감이 없어질만큼의 동경을, 반대로 우리같은 외부인을 미워하는 감정도 바라지 않았다. 뭐가 옳은 건지. 안재성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낮게 보지 않는, 그래서 용돈도 마음 편히 줄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 아이들에게 그럴 리는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고. 그 아이들이 이 이후에 사람들에게 똑같이 손을 벌리게 되고, 관광객들은 아이들을 낮춰보고 쉽게 볼테고, 그러면 그걸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잘 견디고 잘 받아들이면서 자랄 수 있을까? 우리의 위선적인 태도, 시선이 아이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두려웠다.

  어쨌든 돌아온 숙소. 오늘밤은 저녁이 완전 근사했다. 아프리카에서 이렇게 갖춰진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될 줄은. 밥, 미트볼 스파게티, 샐러드, 감자로 배를 잔뜩 채우고 샤워도 깨끗하고 조용한 1인용 화장실에서 할 수 있었다.
  식사 후에는 하림의 '마사이 소년'이란 노래를 배웠는데 지금은 동물들의 땅이 되어버린 그래서 마사이들을 쫓아낸 그 땅에 아스팔트가 깔리고 신발 없이 살단 마사이에게 폐타이어 샌들이 신겨지게 된 이야기를 담은 노래였다. 그렇게 가슴 아픈 마사이들의 역사를 아름다운 선율에 녹여낸 하림이 멋졌다.
  저녁을 먹고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웃다 '날범과 사자'라는 제목의 돌림시가 탄생했다. 갑자기 하림의 청으로 애송시를 낭송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내 차례가 되자 머릿속이 하얘졌다는. 그리고 '폴 발레리'의 시와 고정희의 '고백'과 '최승자'의 시가 만나고 결국은 '제물'을 주제어로 돌아가며 한 줄씩 시를 지어서 나를 제물로 바치는 시가 만들어졌다.

     오늘 이 순간을 기다렸소
     날 잡아 잡수세요
   
     살려주세요!
     도망갈테면 도망쳐 봐

     죽기 전에 물 한 잔만 주세요
     삽을 줄테니 우물을 파거라
     네에

     
  이 다음엔 사자가 사실은 물을 마르게 한 죄로 사자가 되어버린 왕자였다느니, 그래서 다시 왕자가 되어 나와 결혼을 했다느니 별별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대단한 돌림시, 아니 이야기. ㅋㅋ 그러다 결국은 세렝게티에서 나를 제물로 바치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에라, 모르겠다. 제물로 바치든지 말든지 잘 자야지. 시간이 아깝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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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다훈이네 집앞 마들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아슬하게 공항도착. 잠시 미아(?) 신세가 될 뻔했으나 야리와의 통화로 무사히 예뚜들과 합류했다. 다만, 하늘을 날고 있는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액체 미스트 스프레이다. 제발 가방에서 뻥하고 터지지 않길.ㅠ
  오사카 거쳐 카타르 도하로 10시간 넘는 비행을 했다. 비교적 기내식은 훌륭하고 승무원들도 친절했지만 자리가 비좁아 내 다리 길이에도 쥐가 날 지경이었다. 화장실도 무지 멀고. 옆자리에 앉아 같이 온 해남의 세련(수영이 어머니)과는 이야기를 많이 나눈 듯. 고정희 시인 추모사업을 해남 지역 주민들과 열성적으로 하시는 듯하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보였는데 예술적이고 사회적인 일을 하신다니 멋졌다. 언젠가 해남에 고정희 시인을 만나러 가야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항공 베개가 자꾸 부푸는 것을 보면서 마음은 뻥하고 터질 것처럼 불안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기어이 '하쿠나 마타타'는 읽었지만.

  
  지금은 카타르 도하. 현재기온 16도. 내가 중동의 한가운데 와 있다는 게 신기하다. 아랍어로 쓰여진 안내판이 판화에 새겨진 동물 무늬같은 그 글자가 이곳의 문화와 공기를 느끼게 해준다. 아랍어는 해독하긴 어렵지만 내 어릴 적 낙서처럼 친근한 반가움이 있다. 그리고 그을린 피부를 가진 사람들, 히잡과 차도르를 쓴 아랍의 여성들, 챙이 없는 모자와 바람이 송송 통할 것 같은 통 넓은 흰 바지를 입은 아저씨들이 지나간다. 영화 '천국의 아이들'에 나왔을 것 같은 아이가 흰 원피스를 입고 손톱엔 봉숭아물을 들이고 금팔찌를 한 채 앉아있다. 내 뒤에서 시끄러운 목소리로 쏼롸쏼롸 해대는 중국인 아저씨도 완벽한 레게머리를 한 까만 피부의 엄마와 아들도 신기하다. 이 낯선 사람들 틈에서 낯선 언어의 리듬과 색다른 사람들의 생김과 분위기, 그것도 어디론가 떠나는 공항이라는 장소가 가지는 설렘 속에 내가 또 하나의 풍경으로 그들과 함께 담겨있다는 게 참 좋다. 아랍 문화의 특성상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 그냥 눈에 넣는다.


  다시 10시간 가까운 비행. 이제 곧 케냐의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한다. 장장 20시간 가까운 비행을 마치는 순간이다. 인도네시아에 이어 적도 부근 두 번째. 여행자들의 로망이라는 아프리카는 내게 어떤 얼굴을 보여줄지, 나는 그곳에서 나에게, 사람들에게, 아프리카에 어떤 나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나이로비 공항 도착. 밖을 나오자마자 "아프리카 안녕!"이라고 외치는 나를 맞은 건 땅과 맞닿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 하늘. 그리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 설렌다! 나도 모르게 "안녕!"이라고 외쳤다. 생전 처음 보는 하늘 가까운 도시에 첫발을 내디딘 기념으로.


  드디어 쭈의 안내로 우리가 21일 동안 타고 다닐 트럭버스 메뚜기를 만났다.(메뚜기는 하림이 붙여준 이름이다) 2층 트럭이라니. 이런 건 또 처음일세. 사람들과 폴짝폴짝 메뚜기를 타고 하늘 위를 달리는 기분을 매일 맛보는 거다. 
  우리와 함께하게 된 리더 JT, 드라이버 뭉가이, 셰프 헨리. 다들 친절할 것 같은 느낌. 덕분에 몇마디 스와힐리어를 배웠다. 아싼떼, 카리부에 이어 하람베(다같이). 가자!도 배웠는데 기억이 가물가물.ㅠ
  이어서 오늘밤 함께 텐트를 쓸 짝을 뽑았는데 난 혼자다. 그래서 버스에서라도 유이와 함께 앉았다. 바깥에 보이는 처음보는 화려한 색깔의 나무들, 건물들, 그렇지만 역시 반가운 건 사람이다. 그것도 낯선 이방인인 우리에게 환하게 손을 흔들며 잠보!를 외쳐주는 아이들.
  잠시 니쿠마켓이라는 마트에 들렀는데 규모에 놀라고 말았다. 우리 홈플러스 이마트보다 크다니. 없는 것도 없고. 사람들도 그곳에서 척척 물건을 사는 걸 보며 신기해했으나 생각해보면 그들은 이 도시의 상류층일 터였다. 재래시장이 아닌 마트에, 자본에, 익숙해진. 케냐 돈으로 환전을 하지 못한 우리는 구경만 하고 돌아섰다. 


  그러는 동안에 날이 흐려지고 시간이 바쁠 것을 예상해 차를 캠핑장으로 돌렸다. 아카시아 캠핑장. 난생 처음으로 텐트를 손수 치고 잘 준비를 하던 참에 후두둑,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역시 우기. 비 때문에 첫날 캠핑은 취소됐지만 비가 와서 더 즐거워진 우리는 피곤한 몸을 따뜻이 뉘일 방갈로와 침대를 얻었다. 
  짐정리를 하고 씻으러 간 샤워장. 아프리카에서 그렇게 깨끗한 1인용 샤워장을 쓰게 되다니. 그리고 빗속에 시작된 우리의 만찬도 훌륭했다. 토마토 스프에 빵 찍어먹고 콩과 토마토를 함께 볶음 음식에 피망이 올려진 흰쌀밥. 그리고 나에겐 별로인 쇠고기 볶음. 암튼, 훌륭한 식사에 tusker라는 흑맥주 맛이 나는 맛난 맥주를 곁들이며 유쾌한 사람들과 멋진 식사를 마쳤다.
  식사 후에는 하림의 <해지는 아프리카>를 배우며 우클렐레와 사람들의 멜로디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시간을 가졌고, 그러다 갑자기 비가 그치고 별이 나온 것을 발견한 내가 "오리온이다!"를 외치자 오리온과 시리우스에 대한 이야기, 별의 역사를 이야기하던 남지가 레이저빔을 들고 운동장으로 나와 본격적인 별자리 공부가 시작됐다. 겨울철 별자리 대삼각형과 오리온, 큰개 작은개자리, 오리온의 칼인 시리우스, 별에도 나이가 있다는 것, 그리고 오늘 제대로 보이지는 않는 남반구의 북극성인 남십자성을 우리가 생애 처음으로 만나게 될 거란 이야기를 별같은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그 순간들은 내가 아프리카의 원시, 순수, 하늘과 만나고 먼 옛날 별을 보고 농사를 짓던 이집트 사람들과 별을 우리의 사는 모습이라 여겼던 우리 조상들과 만나고 먼 미래일지 과거일지 모를 또다른 별의 나와 같은 생명체를 만나는 새로운 문을 연 시간이었다.

  침대로 돌아와 모기장에 침낭 속에서 다들 잠을 청하는 가운데 기억의 한 자락이라도 더 붙잡기 위해 일기를 쓴다. 그리고 잔다고 해놓고 조금 전까지 함께 불을 밝히고 있던 옆침대의 여행 친구들이 고맙다. 아름다운 밤이다. 아프리카 여행을 시작하기에.

별의 저 먼곳에서도 나와 함께 좋은 꿈을 꿀,
내 친구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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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바로 전날이다. 아프리카카 날 받아줄까? 했던 나의 물음에 여러가지 시험을 거친 기분이다.
  일단 말라리아 약을 얻느라 광주 시내를 이잡듯이 뒤지는 난리를 쳤고, 광주를 떠나오면서 택시에도 아프리카 책들을 놓고 내렸고, 끝까지 공항에서도 헤맸다. 잃어버린 책들은 아깝지 않으나 아프리카 여행 일기장은 슬프다.ㅠㅜ '아프리카'라는 시도 적어두었는데, 사라지다니. 그래도 무사히 다훈이 집에 도착했다.
Posted by 비단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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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프리스쿨 2차 모임에 다녀오는 길이다. 지금은 귀에 하림 1집을 듣고 있지만 머릿속에 자꾸 맴도는 건 Jambo Africa 노래다. 아직은 말라리아 약도 못 구하고 황열병 주사도 안 맞았지만 아프리카 콩코에서 왔다는 난민을 만난 것만으로, 아프리카 젬베 공연과 원시성이 팍팍 느껴지는 화음 가득한 노래를 들은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벌써 아프리카로 날아가고 있다.
  그런데 겨우 읽은 책이라곤 여행책 두 권뿐이다. 어서 다큐도 보고, 우화집도 읽고 해야겠다. 사람과 문화와 역사를 알고 들어가는 것과 그냥 무작정 내가 가니까 열어보여달라는 것은 너무 다르다. 아프리카가 가슴을 열고 나를 맞을 수 있도록 나도 공부를 하고 가야겠다.
  지난번 모임에선 어딘과 쭈가 눈에 들어오더니 오늘은 유이와 승달이, 하림을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다. 여행학교에서 뭔가 내가 할 일을 빨리 찾고 내 자리를 만들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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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첫주 샌드위치 휴일에 1박 2일로 진언니랑 지리산 둘렛길을 돌았다. 어느날 한겨레 21에 소개된 지리산 둘렛길 기사를 보고 언니랑 나랑 어쩜 둘다 혹해서 서로 전화통 붙잡고 얘기하다 갑자기 여행코스로 결정!!
  제주올레에 이어 오래전부터 있었던 지리산 주변 마을마을을 연결했던 둘렛길을 복원하고 있다는데 그 첫구간을 돌기로 한 것이다. 나는 광주에서, 언니는 부산에서 출발하고 남원에서 만나서 버스를 갈아타고 매동마을에서 시작!! 0구간인 인월은 시간상 포기해야 하는 아픔이 있었지만 1구간에서 2구간까지 17시간 정도를 이틀간 걸었다. 그리고, 우리가 숙소로 삼은 벽송사도 나름 괜찮았고. 물론 난 개인적으론 실상사를 사랑하지만. ㅎㅎ 지리산 둘렛길을 걸으면서 만난 나무로 깎아놓은 둘렛길 표지들,  친절한 동네 어르신들, 그리고 함께 둘렛길을 걸었던 보기 좋았던 가족들까지. 길 위에서 만난 사람과 자연이 내 기억의 일부가 됐다. 다음에 몇 구간 개통을 더 하면, 더 오랜 시간 둘렛길을 둘러둘러 걸으면서 많은 사람과 자연과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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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혜영언니랑 창평여행을 함께 했다. 우리의 원래 계획은 2박 3일 서울이었으나 ㅜ 서로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1일 드라이브 코스 물색 중에 창평을 가게 된 것. 우리나라 최초로 슬로시티 지정이 됐다는 창평은 걷기 좋은 아기자기한 코스가 많다. 달뫼 미술관, 돌담길, 전통 고택들, 80년대 풍경이 그대로 남아있는 듯한 창평면 시내, 아기자기한 창평 초등학교, 그리고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기록이 남아있다는 미암박물관, 천연염색 공방까지.. 그런데 우리가 간 날은 미술관도 공사중이고, 박물관도 문을 안 열고, 공방은 있는지도 모르고 갔다는. ㅜ 다음엔 더 멋진 코스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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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라비치의 둘잿날, 오늘은 아침 일찍 1등으로 일어나서 해변을 잘란잘란했다. 슬라맛 빠기!!(아침 인사) 해변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의 생기아 세 가지 색깔로 빛나는 바다 - 에메랄드, 청남, 검푸른 미역색 - 솔솔부는 바람이랑 새하얀 모래! 그 속에서 혼자 헤죽^---^ 웃고 있는 나. 사진도 찍고 놀다가 언냐랑 은영이가 등장하면서 본격 사진찍기 시작! 아침산책 후 호텔에서 주는 커피랑 토스트로 아침을 때웠다. 토스트와 커피와 잼의 조합이 아주 굿. 

  드디어 진짜 바다 한가운데로 출발~~^^ 모터 달린 작은 배에 튜브까지 빌려서 나갔으나, 내 몸은 오늘 바다에 뜰 상태가 아니라는 ㅜㅜ 기름냄새로 머리가 어질어질.. 다른 사람들은 스노쿨링 하러 바다로 풍덩풍덩 하는 동안 나는 ㅠㅜ 그러다 발견한 것이 있었으니, 오히려 배 위쪽이 바람도 살랑 불고 기름냄새도 없고 바다와 하늘이 훠~얼씬 잘 보인다는 것! 약간의 균형감각만 있다면.

  그래도 아까 맡은 기름냄새에 너무 힘들어서 우리는 잠시 섬에 정착했다. 섬에서 코코넛 빨대 꽂아먹기도 시도해 보고(태국에서 첨 먹었을 때보다 여기가 더 맛있었다 ㅋ) 범작가로 변신!!하여 아름다운 화보촬영도 게시했다. ㅎㅎ 아름다운 섬과 바다와 그 풍경과 하나가 된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는 거 행복해~~~~♥ 
 
  그러는 동안 우리가 점심으로 해치울 바닷가재를 구하러 언냐와 은영이가 사라져간 낯선 동네에 들어갔다가 둘은 못 찾고 대신 허버 귀여운 네 아이를 만났다. ㅠㅜ 그런데 애들이 넘 비싸게 구는 게 아닌가.. 인이랑 사정사정을 했으나 넘어오지 않아 결국 함께 사진 찍기도 포기. 지쳐 돌아와 다시 원두막에 쉬는데 어디서 언니와 은영이가 바닷가재를 들고 등장, 그거 매달고 우리는 다시 바다로 갔다.

  이번에는 사람들 다 재밌게 노는데 혼자 심심은 하고 ㅜ 그래서 애초에 배 위로 올라가 경치 감상. 배고파 돌아오는 배에선 아저씨가 70~80km로 달려주셨는데 나 혼자만 그대로 균형을 잡고 서서 바닷바람을, 바다에서 튀겨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았다. 짜릿한 기분!

  그리고 다시 돌아온 비라비치. 드디어 기다리덧 바닷가재 요리가! 삼발소스만 있었어도 더 맛났을 것인디 아쉬웠으나 그 쫄깃한 조직만은 오래 혀에 남았다. 


 비라비치와 작별하고 총알탄 아저씨를 다시 만나 이번에는 은영이네 집으로 이동! 그런데 가는 길에 웬 이사가는 가족이 차를 세우는 게 아닌가. 오메~ 근디 식구들 다섯이랑 엄청난 자전거에 이삿짐까지 차에..ㅋ 정원완전 초과. 그러고도 웃고 가는 사람들과 멀쩡히 달리는 차가 신기할 따름. 그거 구경하다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내 썬글라스..

  암튼, 이래저래 은영이 집에 도착. 짐 풀고 잘란잘란 하면서 밥 먹으러 가는 길. 언냐랑 갑자기 기분이 업돼서 인권이 아저씨의 '돌고돌고돌고'를 열창하고 동네를 돌아다니는데 "아악~!!"하는 소리에 놀라 옆을 보니 인이가 갑자기 시궁창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길 가다가 베짝 아저씨들 근처로 갔는데 갑자기 땅이 확 꺼지더란다. 이런..ㅡㅡ 덕분에 현지인들 다 모여들고 인니어로 뭐시라 뭐시라 아마 동네 뉴스거리가 된 분위기라니. 

  은영이가 인이를 치료하러 데려간 사이, 우리는 길가 유명한 점포에서 튀김 비슷한 파이를 사고 드디어 유명한 포장마차러럼 생긴 식당에 도착. 생긴 건 포장마차인데 아얌가 베트남 쌀국수같은 수프와 밥까지 아조아조 맛있어서 손 다 담그고 현지인 버전으로 맨손 식사 시작!! 그랬더니 옆 테이블에 있던 동네 아저씨들 놀란 눈으로 시선 고정..ㅎㅎ 뭘, 그리 놀라시나용~ 우리도 사람인데.

  저녁이 끝나고 동네 돌아다니면서 마르키사와 구운 옥수수를 사서 집에 도착. 비라비치에서 놀고 온 옷들을 빨아 널다가 은영이네 옆집에 사는 현지인 아줌마랑 딸을 만났는데 한 시간동안 수다를 떨었다는 거. 물론, 언니가 있어서 해석이 가능했지만 나도 몇 마디 알아먹겠더라. 인니어는 동사, 명사 다 같은데다 반복되는 말이 많아서 좋아. ㅎㅎ 덕분에 삔까르(똑똑하다)~~ 소리 들으면서 즐거이 이야기를 했다. 쿠키도 얻어먹고, 어색하지 않게 인도네시아 사람과의 대화에 미끄러져 갔다니 ㅋㅋ 역시 어딜가나 사람은 똑같다. 말이 잘 통하지 않더라도 웃음만으로, 먼저 내미는 손짓으로 가까워질 수 있으니. 아, 그리고 그들이 했던 중요한 말. 나더러 하얗단다. ㅋㅋ 나이는 스물?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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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새벽부터 버스 안에서 길라 아낙(미친애)이 울어대는 덕분에 언니는 잠을 완전히 설쳤다. 나는? 준비해간 귀마개 덕에 숙면을..ㅋㅋㄷ. 그런데 이 나라에선 '신성한 존재'인 아이들을 절대 나무라지 않는단다. 이런 씨.. 신성하면 신성하게 키울 일이지 잠잘 시간에 빽빽 울어대고 신경질 내는 아이들을 내버려 두다니.
   버스 안에서 있었던 사건 둘, 중간에 버스 안에서 갑자기 복도에 떨어져 있는 내 가방 발견 ㅡㅡ" 놀라서 지갑부터 찾았으나, 여권도 돈도 그냥 다 멀쩡히. 급 카메라 생각에 손을 뻗쳤는데, 잡히질 않는 거 아닌가..ㅠㅜ 없어진 줄 알고 언냐부터 깨웠는데 가방 바닥에 고이..ㅋㅋ 냐하하..

  암튼 다시 언니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사이 도둑이 들지 않았을까, 혼자 있던 인이는 괜찮을까 걱정했는데 해맑게 웃다니.. 기집애. 암튼 묵은 빨래부터 개안하게 하고 따땃하고 풍족한 물로 즐겁게 샤워를~~^^ 한숨자로 일어나 짐을 꾸려 술라웨시의 남쪽 해변 비라비치로 향했다. 
 
  가는 길에 인이랑 떼떼 7번을 잡아타고 디아몬 쇼핑몰에서 은주언니를 만나 장을 보았는데, 그 사이 언냐는 은행가 여행사를 들러 만나기로 약속. 우리는 몰에서 스노쿨링 장비를 구했으나 품절됐단다. ㅠㅠ 은주언니가 옆 까르푸에 가서 장비가 있는지 알아보는 동안 인이랑 나랑은 'cafe de coral'이란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아주 입에 맞는 나시고렝과 맛난 국물요리가 굿굿. 그러고 나서 아이스 커피 사고 화장실만 다녀왔는데 언니와 약속한 1시가 코 앞. 오메~ 총알택시 잡아타고 겨우 약속장소에 시간 맞춰 도착. 드뎌 비라로 출발~~♥ 근데 이틀동안 우리를 책임질 운전기사 아저씨가 여자만 타면 '까무까무'(애인한테나 쓴다는) 하면서 안전속도로 그녀들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달리는 게 아닌가...ㅡㅡ+ 그러더니 비라에서 만나기로 한 우리 은영이를 태우면서부터는 100km 이상으로 팍팍 달려주셨다는. ㅋㅋ
 
  총알 탄 아저씨 덕에 일찍 도착한 비라. 오~~~ 경치가 정말 죽여준다. ㅠㅜ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바다보도 예쁜 모래밭, 에메랄드와 푸른빛, 흑빛의 3색으로 빛나는 한적한 바다. 그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잡은 우리의 숙소! 완벽하닷. 비라비치 호텔에서 한 저녁식사도 최고였다. 식사를 하면서 알게 된 건데, 비르 빈땅은 병째 마셔야 제맛이라는. ㅋㅋ

  밤에 나간 바다, 아까 보았던 흰 모래알들이 하늘로 다 올라갔는지 쏟아지게 많은 별들, 별똥별도 스치고, winterplay의 노래와 함께 파도소리는 밀려오고, 바닷가에 샤롱을 깔고 누워 바다와 함께 잔잔히 물결이 되는 느낌에 젖었다.
  다만, 다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는 걸 보니 갑자기 서른, 그 외로움이 밀려온다.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에 따라 삶의 아름다운 무늬가 생겨난다는데 나는 과연 어떤 무늬로 서른을 새겨가고 있는 것일까. 별을 보는데 웬지 별똥별도 별의 눈물인 듯. 슬퍼 보이는 별이 빛나는 만큼 나도 저렇게 아름답게 빛나고 있을 거라 생각해 본다. 어느 만큼의 크기와 밝기로 빛나고 있을지 모르지만 더 아름답게 빛나기 위해 지금은 눈물을 머금고 있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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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타 - 보리 경치 감상 - 페스타 - 빠뚜 뚜모 낭안에서 식사 - 께떼께수 - 란떼빠오

  오늘은 인도네시아의 1목적, 장례페스타를 보는 날! 아침에 일어나 주변을 잘란잘란 할 생각이었는데 아침부터 비오는 바람에 포기. ㅜ 아침은 란떼빠오에서 주는 맛난 토스트와 버터, 그리고 팬케이크, 또라자 커피로 가볍게 했다. 그리곤, 기사아저씨를 만나 페스타를 한다는 마을로!

  마을 입구부터 장례식에 참석하러 온 사람들이며, 사람들이 가져온 돼지들로 흥성거리는 분위기가 팍팍 느껴졌다. 소 껍질에 내장을 아침부터 보게 됐건만 '축제'라는 말을 실감케하는 사람들의 흥겨운 표정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데, 축제의 백미인 제사용 소를 잡는 일은 이미 새벽에 끝이 났단다. ㅠㅠ 그거 보러 왔는데. 하루에 한 마리만 잡고 나머지는 마지막날 전부 잡는다는데 우린 마지막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 페스타 행진 때까지 기다리기도 뭣하고 해서 준비하는 동안 '보리'에 가기로 했다. 보리는 다른 부족의 장례 풍습인데 언덕 위 높은 곳에 돌로 비석을 높이높이 세워 죽은 사람의 영혼을 기린다는 곳이다. 선선하고 좋은 바람이 부는, 게다가 파란 하늘이 우리를 즐겁게 했던 보리.  Λ 이렇게 생긴 비석을 소를 25마리나 잡아야 쪼끄마한 걸 하나 세울 수 있다니 얼마나 대단한 가문들이길래 높은 비석을 쌓았는지 신기했다는!

  암튼, 보리에서 사진 찍고 바람 좀 맞다가 다시 페스타 마을로 돌아왔다. 어정쩡하게 마당에 서서 손님 맞이용 똥꼬난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던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이 있었으니, 선해 보이는 인상에 나름 있어보이기까지한 청년! 그가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손짓 하는 게 아닌가. 조심스레 따라가 선물용 담배를 내밀었더니 쑥스러워하며 받고는 드디어 똥꼬난으로 안내! 그것도 꽤 높은 곳에 있는 7번 똥꼬난이라니.ㅋㅋ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흰 머리를 가진 소를 잡을 수 있는 왕족 가문의 장례식이었고, 그도 왕족이었다는 것. ㅎㅎ 암튼, 7번에 앉아 마음껏 사진도 찍고 또라자 전통 차에, 술에 다과 대접도 받고 편히 있다가 내려왔다. 페스타를 한 마당은 좀 좁았지만 사람들 숫자도, 동물들 숫자도, 장례식의 규모도 장난이 아니었다는. 청년, 복 받을 겨~~

  그 후, 경치가 예쁘다는 바뚜 뚜모 낭안으로 고고씽! 거기서 갑자기 바르셀로나에서 온 여행객을 만났으나 오랜만에 하는 에스빠뇰이라 "올라! 꼬모 쎄 야먀?"(안녕, 이름이 뭐니?) "부엔 비아헤, 아디오스~"(즐거운 여행 되길, 안녕~) 달랑 네 마디만 했다는..ㅜㅜ 이럴.. 그래도 식사로 시킨 오믈렛이랑 아얌은 정말 겁나 맛있었다는..ㅎㅎ 배불리 먹고 떠나는 길에 귀에는 김동률의 <출발>과 이상은의 <삶은 여행>을 꽂고, 바람에 몸을 맡기며 할랑할랑 여행을 하는 기분이란~~ 어제 제대로 못 봤던 께떼께수로!! 

  그런데, 설마 허걱쑤!! 어제 그 몹쓸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반가이 막 뛰어오는 게 아닌가..!! ㅡㅡ+ 아예 무시, 우리끼리 여행 온 인도네시아 학생들이랑 몰라라 사진 찍고 끝까지 무시하고 돌아왔다. 단체사진 찍는 동안 갑자기 나타나서 사진에 또 박혔지만.. 짱..

  다시 돌아온 란떼빠오. 살롱을 걸치고 인이랑 주변을 잘란잘란했다. 현지에 완전 익숙한 차림으로 벼타작도 하고 동네 꼬마들이랑 사진도 찍고... 그리고 지금 돌아와 이걸 쓰고 있다는 거. 이제 배고파지믄 밥 먹고, 시간 허락하면 다시 돌아댕기다가 야간 버스 잡아타고 언냐 집으로 간다. 내일은 아침부터 비라해변으로 향하는 빡쎈 일정!! 무사히 소화하길~


























Posted by 비단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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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의 피로가 덜 풀렸는지 10시 넘어 기상, 언니와 내가 만든 감자볶음과 쏘야로 아침 시작. 또다시 궁글궁글 하다가 언니랑 같이 핸드폰 사러 시내로 나갔다. 처음으로 우리나라 소형봉고 다마스를 개조한 듯한 끼리버스도 타고, 끼리!(내리겠다는 말)도 외쳐보고 언니랑 잘란잘란의 백미, 베짝(자전거로 만든 인력거)도 탔다. 공기는 안 좋지만 그래도 골목골목 베짝을 타고 다니는 재미는 완소..*^^*

   드디어 전자상가 도착. 처음 하러 간 가게에선 칩입력, 재생도 제대로 못하고 돈만 붙여먹는 나쁜 놈 만나 사기를 당할 뻔 하였으나, 언니의 임기응변으로 넘기고 똑똑하고 예쁜 점원언니 만나서 다시 번호를 받았당.ㅋ 해외에서 내 전화가 생기다닛. 모롤롤라 08154-3092-3215라고.. 액정에 퍼런 불은 별로지만 전화는 빵빵 터진다.^^~ 

  그러고 언니랑 환전소 들러서 여행경비로 쓸 돈을 환전했다. 달러는 조금의 흠집이나 접었던 흔적이라도 있으면 환전을 안 해준다는 사람들이 인도네시아 돈은 마구 접어서 고무줄로 묶어놓고 심지어 박음쇠로 탕탕 박아주기까지 한다. 이상한 사람들.. 

  집에 와선 짜파게트 올리브 촉촉하게 끓여 언냐랑 인이랑 먹고 푹 놀고자고 쉬다가 언니 친구 은주언니를 만났다. 여기와서 은주언니는 유치원 선생님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언니가 더 높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니. ㅋㅋ 그리고 벌레들의 습격과 모기의 등장으로 힘들었으나 내일부터 본격여행을 할 짐도 싸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참, 오늘 신나는 게임 하나를 했다. 두꺼비 입에서 나온 공 맞추기 게임. 퍼즐버블하고 비슷한데 짱 재밌다. 근데 두꺼비가 공을 너무 빨리 뱉어서 힘들었다. ㅜ 내공을 쌓아야지.


Posted by 비단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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