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달빛

숨은 노래 찾기 2010. 3. 23. 22:08

  봄이 왔다.

  ‘밤이도다 / 봄이다 / 밤만도 애달픈데 / 봄만도 생각인데 / 날은 빠르다 / 봄은 간다’로 시작하는 김억의 시가 봄이 되면 떠오른다. 얼음도 녹고 바람도 부드러워지고 따뜻한 봄인데 봄은 밤이 따뜻해진다, 싶으면 금세 가 버린다. 그래서인지 사라지는 봄은 슬프다. 오는 봄이 기쁜 만큼. 혹은 마음이 봄 같지 않으면 봄 내내 따뜻하지 않을지도.


  5. 옥상달빛 1집 - 옥상달빛 & 하드코어 인생아

  최근에 들을만한 인디음악을 찾다가 숨은 보석을 만났다. 그냥 한 번 들어나볼까 하고 클릭한 노래가 이렇게 대박일 때는, 게다가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면서 봄을 안겨주는 음악을 만나면 참 좋다.

이름처럼 홍대 근처 옥탑방에서 음악을 만들었다는 그녀들. 기타, 피아노에 멜로디언, 실로폰 같은 아기자기한 악기들로 옥상에 쏟아지는 봄밤의 달빛 같은 은은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멜로디뿐 아니라 음악을 만들던 이야기들을 엿듣는 듯한 둘의 대화도 곳곳에 들린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음악은 소극장 무대 위 작은 조명 아래 두 여자가 꿈과 현실을 넋두리하듯 노래하는 뮤지컬 같은 느낌이 든다.



옥상달빛 - 옥상달빛

옥상에 올라가 그 밤을

옥상에 누워 그 달빛을

랄라라-

황홀한 이 밤

랄라라-

그대와 여기서 노래를

그대와 여기서 청춘을

랄라라-

황홀한 이 곳

랄라라-

사랑하는 사람들아

이 곳에 모여 앉아

사랑을 노래하자

청춘을 우리를 오늘을 내일을 노래하자

 

  대학 때 자취를 하던 친구가 있었다. 옥상이 있는 집에 옥상 위에는 평상도 있었다. 친구들이 모이면 밤새는 줄 모르고 놀았던 그 때, 어느 날 그 집 옥상에서 삼겹살 파티를 한 적이 있다. 여자 셋에 남자 셋 쯤 모여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첫사랑 이야기도 하고 그 시절 유행하던 노래며 대학 때 부르던 투쟁가를 목청껏 불러 제끼기도 하고 그렇게 날이 새는 줄을 모르고 놀다가 올라오는 한기를 느끼고 그 친구 집 이불까지 둘둘 말고 꼬박 뜨는 해를 맞았던 날이 있었다. 그렇게 이불 감고 쓰러져 잤던 둘은 며칠 뒤 커플선언을 했다.ㅋ 지금은 그렇게 미친 듯이 놀아줄 녀석들도 없고, 객기도 사라진지 오래지만 언젠가 한번쯤 그 밤처럼 추운 줄도 모르고 소주잔을 기울여가며 사랑스런 사람들이랑 마주앉아 있어보고 싶다. 봄밤의 꿈처럼.

  참, 이 노래 요즘 좀 떴다. 드라마 ‘파스타’에 삽입이 된 이후로 귀가 좋은 몇몇 사람들은 찾아 들은 모양이다. 동생 범다영이도 노래를 들려줬더니 “파스타에서 공효진 배경음악으로 나온 건데.”한다. 움, 좋은 음악은 빨리 따는 사람들이 있다. 역시.



하드코어 인생아 - 옥상달빛

뭐가 의미 있나 뭐가 중요하나 정해진 길로 가는데

축 쳐진 내 어깨 위에 나의 눈물샘 위에

그냥 살아야지 저냥 살아야지

죽지 못해 사는 오늘

뒷걸음질만 치다가 벌써 벼랑 끝으로

어차피 인생은 굴러먹다 가는 뜬구름 같은

질퍽대는 땅바닥 지렁이 같은 걸

그래도 인생은 반짝반짝 하는

저기 저 별님 같은 두근대는 내 심장

초인종 같은걸, 인생아
 

  제목과 달리 예쁜 멜로디,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데도 참 씁쓸한 내 마음을 너무 잘 아는 것 같은 노래다. 삶이 무거울 때,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질 때 다시 걷게끔 만들어줄 노래다. ‘어차피 인생은 굴러먹다 가는 뜬구름 같은 / 질퍽대는 땅바닥 지렁이 같은 걸’이라는 가사는 정말이지 공감백배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익숙함이 ‘그러게’라고 마음에서 맞장구를 치게 만든다. 그리고 너도 언젠가는 반짝거리는 초인종을 누르게 될 날이 있을 거라고 손잡아 주는 목소리가 고맙다.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 - 하림도 이 노래가 너무 좋아서 라디오에서 한 번 불러봤단다. 그런데 그 느낌이 살지 않더라고.ㅋ 그래서 담부턴 노래 망칠까봐 안 부르기로 했다는. 그래도 나는 가끔 이 노래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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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단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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