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브로콜리 너마저 1집 - 보편적인 노래 &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 앨범도 그렇게 만난 거였다. 광주에 내가 자주 찾는 예술영화 상영관이 있다. ‘광주극장’이라는. 우리 엄마 아빠보다 윗세대에 태어난 극장인데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이 이곳저곳에 생겨나면서 사라질 뻔한 것을 상영스크린이 하나뿐인 단관체제를 고집하면서 예술영화,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된 광주의 숨은 명소이다. 어느 날 극장엘 가서 커플석을 차지하고 전용 무릎담요를 덮고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데,

트럼펫으로 시작하는 밝고 경쾌한 멜로디에

“두근두근대는 나의 맘을 나도 알 수가 없네 / 한 마디 말 못하고 벌써 붉어지는 나를 어떡해 / 시간 있으시면 커피나 하자 말 할 수가 없네 / 커피를 싫어하면 쌍화차를 좋아하면 어떡해”

하는 귀여운 노랫말이 흘러나오는 거였다. 그냥 잊고 지내다 다음 극장엘 갔을 때 또 그 앨범을 듣게 됐는데 다른 곡도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자마자 극장 매표소에 가서 알바하는 친구에게 앨범 제목을 물어보곤 내 것으로 만들었다.^^ 그 이후로 한동안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는 내 컬러링과 벨소리가 되었다. 여기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들의 노래 두 곡을 옮겨 본다.


- 보편적인 노래 -

보편적인 노래를 너에게 주고 싶어

이건 너무나 평범해서 더 뻔한 노래

어쩌다 우연히 이 노래를 듣는다 해도

서로 모른 채 지나치는 사람들처럼

그때, 그때의 사소한 기분 같은 건

기억나지 않았을 거야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건 너무 슬퍼

사실 아니라고 해도 난 아직 믿고 싶어

너는

이 노래를 듣고서 그 때의 마음을

기억할까, 조금은

보편적인 노래가 되어

보편적인 날들이 되어

보편적인 일들이 되어

함께한 시간도 장소도 마음도 기억나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의 노래

보편적인 이별의 노래에

문득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때, 그때의 그때

그렇게 소중했었던 마음이

이젠 지키지 못할 그런 일들로만 남았어

괜찮아 이제는 그냥 잊어버리자

아무리 아니라 생각을 해보지만


앨범 제목처럼 튀지 않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낱말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노래다. 그런데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는 오히려 점점 사람을 끄는 마음을 담은 노래다.

언젠가 혼자 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고속버스에서 이 노래를 듣는데 그냥 툭, 하고 눈물이 흘렀다. 늦은 밤 고속버스에 호젓이 앉아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함께 음악을 들을, 아니면 어깨를 기대고 45도로 잠들어 줄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이 그냥 슬펐다. 한편으론 그런 나에게도 추억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나 있을 법한 사랑이 있었음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노랫말에 그냥 맘 한 켠이 짠해왔다.

이 노래처럼 그 순간에는 나를 지배하는 전부라 여겨졌던 사랑도 지나고 나면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었던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지만 그런 흔하디 흔한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이어가게 하고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은 아닐까. 가끔 툭, 하고 흘러내릴 수 있는 눈물이 되기도 하고. 사랑을 잃고 나서도 무뎌지지 못하는 당신에게, 아니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잃어버린 또 다른 당신에게 이 노래를 권한다.


-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

친구가 내게 말을 했죠

기분은 알겠지만 시끄럽다고

음악 좀 줄일 수 없냐고

네 그러면 차라리 나갈게요

그래 알고 있어 한심한 걸

걱정끼치는 건 나도 참 싫어서

슬픈 노랠 부르면서

혼자서 달리는 자정의 공원

그 여름날 밤 가로등 그 불빛아래

잊을 수도 없는 춤을 춰

귓가를 울리는 너의 목소리에

믿을 수도 없는 꿈을 꿔

이제는 늦은 밤 방 한 구석에서

헤드폰을 쓰고 춤을 춰

귓가를 울리는 슬픈 음악 속에

난 울 수도 없는 춤을 춰

내일은 출근해야 하고

주변의 이웃들은 자야 할 시간

벽을 쳤다간 아플테고

갑자기 떠나버릴 자신도 없어


어디선가 들어본 노래라고? 생각을 한다면 당신은 듣는 귀가 좋거나, 유승호의 팬일 지도. 사실 이 노래는 요즘 슈퍼100이라는 떠먹는 요쿠르트의 배경음악으로 삽입이 돼서 조금 알려진 노래다. 그렇지만 CF가 노래의 분위기를 잘 살리진 못했다는 생각이다.

이별을 맞고 그 혼란과 공백을 일상으로 껴안기가 힘든 나는 갖가지 이별대처법을 찾아낸다. 첫 번째, 음악을 정신이 나가도록 크게 틀어놓기. 그러나 함께 지내는 친구에게 핀잔을 듣고 볼륨을 줄인다. 두 번째, 훌쩍 여행을 떠나기. 그러나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접는다. 세 번째, 주먹으로 힘껏 벽에 흠집내기. 이것도 이웃들이 자는데 방해가 될까봐 포기한다. 결국, 밤 열두 시 공원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면서 혼자 뛰어도 보고, 혼자 방 한 구석에서 헤드폰을 끼고 슬픈 음악을 들으며 미친 척 춤도 춰 보지만 귓가에는 떠난 사랑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함께 춤추던 생각만 자꾸 떠오를 뿐이다.

소심한 A형 같은 이런 이별 대처법을 몸소 실천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강추한다.

이 노랫말들에 나도 모르게 슬몃 끌린다면, 당신은 이미 브로콜리의 매력에 빠진 거다. 처음 맛 본 사람들은 밋밋해서 당최 무슨 맛인지 알 수 없다는 브로콜리, 그렇지만 그 맛을 알아버린 사람은 데치거나 볶거나 초장이나 마요네즈에 찍어 먹거나, 카레에도 넣어, 그냥 생으로도 자꾸 먹게 되는 묘한 맛이 브로콜리의 매력이 아닐까? 화려한 보컬도, 그럴듯한 비주얼도 없다. 아마추어같은 밋밋함? 아니 풋풋함. 그러나 그 안에 담겨진 노랫말은 브로콜리의 효능만큼 우리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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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단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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