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20 시

영화는 영화다 2010. 6. 20. 20:43

감독 이창동 (2010 / 한국)
출연 윤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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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 - 김미경 선생님과

  나도 시를 좋아한다. 시는 마음에 위로를 준다. 외로운 날, 힘든 날, 마음이 착 하고 가라앉는 날엔 시가 약이 된다. 그래서 그런 날엔 서점에 가서 시집을 고르고, 그러는 동안에 내가 시처럼 착해진다는 생각을 한다. 그도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내 마음을 적어주거나 내가 누군가의 외로된 마음을 만져준다는 생각을.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어쩌면 시는 세상을 참 왜곡한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것만 보고싶어하고 자꾸 피하는 미자를 보면서, 그리고 시 강의를 하는 김용탁 시인과 시낭송회를 하는 사람들, 시 강좌에 들어와 자기의 아름다운 시절들을 이야기하려 하지만 시는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시가 아름다우려면 세상과 멀어져야 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가 사라져가는 세상에, 시를 노래하려는 것부터가 모순이자 거짓인지도. 그래서, 시를 좋아하는 내가 불편해지는 영화였다.

  그리고 미자가 자신의 시를 진정으로 써내려가기 위해서 범죄를 저지를 손자를 신고하는 마지막 부분을 보면서 마음이 어지러웠다. 시를 쓰기 위해 순수해지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그런 사회적인 윤리를 우선시 하는 게 맞는 건가 헷갈렸다. 어쩌면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없애고, 순수한 자신을 찾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은 아니었을까 하는 묘한 생각이 들었던 거다. 사회적 윤리에는 부합하지만 가족을 생각하는 윤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 어쩌면 시는 그래서 세상과 동떨어진 채 티끌하나 묻지 않으려는 마음인지도. 사람들이 그래서 시를 쓰고 싶어하지만 지금처럼 시가 어울리기 어려운 세상에서는 시를 쓰려는 마음은 사치인지도 모른다. 
  
  불편하다. 시는. 나혼자는 깨끗해지려는 고해성사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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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단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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