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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노바디 |
감독 |
자코 반 도마엘 (2009 / 독일,프랑스,캐나다,벨기에) |
출연 |
제어드 레토,사라 폴리,다이앤 크루거,린 당 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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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노바디 ★★★★★★★★★★ -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해평샘이랑
제 8요일로 유명한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영화라는 것만으로 끌렸던, 그리고 고맙게도 날 선택해 준 영화. 원래 19일 프로그램에 없었으나 17일에 갑작스레 프로그램이 바뀌어 내가 볼 수 있는 행운을!
주인공 니모는 세 아이들의 아버지로 평범한 삶을 살던 남자였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선지 냉동인간 상태로 보관되어 2092년 먼 미래에 자연사하는 유일한 인류로 인터뷰를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니모는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기억을 지우지 못한 채로 태어나 모든 기억을 갖고 있으며, 현실과 꿈을 오가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찾기 위해 꿈과 현실을 오가며 마지막 남은 자연인으로 사람들에게 사랑과 꿈의 중요함을 알리고 생을 마감한다.
영화를 보면서 난 너무 놀랐다. 감독의 머릿속이 꼭 내 머릿속을 반쯤은 복사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와 닮은 무의식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또 살고 있다니. 아마도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을 현실에서 만나긴 어렵지만, 내 다른 세상인 꿈에서는 얼마든지 만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에 난 이 영화를 절대로 잊지 못할 것 같다. 마치, 운명처럼 만난 영화다.
나도 그랬다. 니모처럼, 영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삶은 그냥 하나의 차원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현실보다 더 많은 세계가, 차원이 펼쳐지는 꿈이 진짜라고 믿었던 거다. 다섯 살 땐가? 혼자 웅크려 앉은 방 안에서 멍하게 있다가 방을 잃었다. 그리고 다른 세상에 잠깐 있다 왔는데 5분 정도밖에 안 됐다고 믿었던 그 시간이 두세 시간이나 지나있었다. 그날부터 난 현실이 중요하지 않았다. 더 크고 넓은 다른 차원의 세계가 더 중요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니모가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 수도 없이 이어지는 얽혀있는 철길들. 그 철길들을 나도 꿈에서 자주 만났다. 나도 꿈에서 그런 철길들 위를 수도 없이 지난다. 처음에는 하나였다가 수도 없이 겹치는 철길, 뿐만 아니라 난 어릴 적 어지럼증이 있었고, 화면조정이 끝난 티비 화면 속의 검정 흰색 점들 사이에서도 수많은 차원의 그림들을 발견하곤 했었다.
그리고 밤이면 정말 많은 꿈들을 꾸었다. 꿈속에서 난 현실과 비슷한 장면에서 출발하지만 어느 순간 현실과 전혀 다른 모습들이 눈 앞에 그려졌다. 그리고 수많은 선택을 마주해야 했다. 그럴 때면, 갑자기 꿈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른 차원의 문을 힘겹게 열었다. 그러나 차원을 넘는 일은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 해서 간혹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정말 내 방으로 돌아오지 못할까봐 그 꿈 속에 갇힐까봐 너무나 무서웠다.
그럴 땐, 반드시 내 방의 문고리를 열고 들어와 내 자리에 누워야했다. 그리고 사력을 다하면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운이 정말로 나쁜 땐 방문을 열고 나가면 어느 순간 괴물처럼 변하는 엄마와 이상한 사람들이 가득한 동네를 만나기도 하고, 심지어 창밖으로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거인들의 다리가 지나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리고 몇 년에 한 번씩 같은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 꿈을 기억했다가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지점에서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해 보곤 한다. 두려운 일이지만. 그리고 아주 오래전 그 꿈에서 만났던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기도 한다. 미스터 노바디에 제 8요일의 주인공이 스쳐지나간 것처럼.
또, 내 꿈에선 우주도 많이 등장한다. 먼 하늘 끝이 아니라 내 머리 위에 바로 토성, 금성, 화성 같은 우주가 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우주를 모빌삼아 흔들기도 하고, 우주의 배치를 내 손으로 퍼즐처럼 바꾸기도 한다.
그리고 지구가 종말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지구의 저 끝에서부터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는 것처럼 건물이 하늘로 사라지고, 사람들도 퍼즐조각처럼 하나하나 뜯어지는. 그런 장면이 미스터 노바디에도 나온다. 그래서, 정말 무섭기까지 했다. 반갑기도 했지만.
다른 점이라면, 도마엘 감독은 사랑을 주로 꿈꾸고 중요한 인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꿈을 꾼다는 거다. 난 너무나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지만. 그래도 만나면 정말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다면 만나보고 싶다. 꼭. 예전에 경신오빠랑 비슷한 이야기가 통했던 적이 있기는 했다. 그래서 첨 술자리에서 5시간 넘게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른다.
어딘가, 나처럼 스스로가 외계에서 왔을지도 모른다고 믿는, 지금도 여러 차원을 오가느라 바쁜, 예전보다는 더 여러 세계로 통하는 열쇠를 많이 잃어버린, 안타까운 사람이 있다면 꼭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무래도 며칠 안에 도마엘 감독을 꿈에서는 만날 것 같다.
명왕성 어디 쯤에서 풍선 가득 달아 흰 테이블을 띄워 놓고 빨대로 냉커피를 빨아 마시면서 사탕 모양의 베개를 베고 우리가 만나 왔던 차원에 대해 이야기를 실컷 나누었으면 좋겠다. 10개의 해가 하나 둘 떠오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