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인 노래'에 해당되는 글 263건

  1. 2009.07.29 노래를 찾는 이유 by 비단구두
  2. 2009.07.29 분홍신을 신고 by 비단구두
  3. 2009.07.29 쇠라의 점묘화 by 비단구두

나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는 않는, 머리카락 보일락말락 숨어있는, 그래서 찾아내는 재미가 있는 음악들을 좋아한다. 어느 바에서 술 마시며 수다 떨다 우연히 들려오는 음악, 라디오를 듣다 무심결에 듣게 된 음악, 오랜만에 연락이 된 친구의 컬러링으로 저장된 음악, 자주 찾게 되는 인터넷 쇼핑몰에 깔린 메인 음악, 잡지 한 켠이나 인터넷 검색에 올라온 누군가가 추천한 음악……. 이런 것들을 줍다 보면 내것이 되는 음악들이 있다. 어쩜 내 노래야! 하는 마음이 드는 것들. 그런 앨범을 여기에 소개하려 한다. 나처럼 기쁜 마음으로 음악을 집어들 누군가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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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신을 신고 
                           - 나희덕

음악에 몸을 맡기자
두 발이 미끄러져 시간을 벗어나기 시작했어요
내 안에서 풀려나온 실은
술술술술 문지방을 넘어 밖으로 흘러갔지요
춤추는 발이
빵집을 지나 세탁소를 지나 공원을 지나 동사무소를 지나
당신의 식탁과 참대를 지나 무덤을 지나 풀밭을 지나
돌아오지 않아요 멈추지 않아요
누군가 나에게 계속 춤추라고 외쳤죠
두 다리를 잘린다 해도
음악에 온전히 몸을 맡길 수 있다니,
그것도 나에게 꼭 맞는 분홍신을 신고 말이에요
당신에게도 들리나요?
둑을 넘는 물소리, 핏속을 흐르는 노랫소리,
나는 이제 어디로든 갈 수 있어요
강물이 둑을 넘어 흘러내리듯
내 속의 실타래가 한없이 풀려나와요
실들이 엉키고 길들이 뒤엉키고
이 도시가 나를 잡으려고 도끼를 들고 달려와도
이제 춤을 멈출 수가 없어요
내 발에 신겨진, 그러나 잠들어 있던
분홍신 때문에
그 잠이 너무도 길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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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읽었던 동화 속 빨간구두는 어딘지 무섭고 아프고 버거워보였다. 그녀를 삼킬 것 같은. 그녀가 구두가 되어버릴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했다.

 '빨강'을 '분홍'으로 바꾸었을 뿐인데 이 시는 신을 사랑스럽게 보이게 만든다. 그녀도 그렇다. 사랑에 빠진 듯한, 숨겨진 욕망이나 자유를 찾은 듯한, 그래서 정말 환히 수줍게 웃고 있을 것 같은 그녀가 보인다. 잠을 깬 그녀에게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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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단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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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라의 점묘화 
                          - 나희덕

  
  언제부턴가 선이 무서워졌어요 거침없이 달리며 형태와 색채를 뿝어내는 선에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사물에 대한 의심이 많아졌다고 할까요 아니면 빛에 대한 난해한 사랑이 생겼다고 할까요 선들이 내지르는 굉음을 더는 견딜 수가 없어요 일요일 오후 양산을 쓰고 걸어가는 여자도 강둑에서 몸을 말리는 남자도 나팔을 부는 소년도 의자에 기대 앉은 노인도 처음엔 완강한 선 속에 갇혀 있었지요 그들을 꺼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선을 빻고 또 빻는 일뿐이었어요 아침에 문밖에서 길어온 이미지를 불에 달군 쇠막대기터럼 망치로 종일 두드려요 저녁 무렵에야 뜨거워지지요 빛은 가루가 되어 다른 빛과 몸을 섞어요 그림자는 다른 그림자에 스며들어요 검은 개는 더 이상 검은 개가 아니에요 개의 털빛과 그 위에 내리는 빛이 만나 어룽거려요 희미해진 개와 고양이와 사람 들은 햇빛 속을 한가롭게 거닐지요 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나는 그들을 알아볼 수 없어요 서로를 삼키고 비추는 점들의 환영, 그 한 폭의 기이한 평화 앞에서 내 눈은 점점 어두워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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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대한 조용한 응시가 묻어나는 시.

  서른이 넘어가면서 나도 어쩌면 선을 버리고 부드러워지고 싶고, 편안해지고 싶고, 희미해지고 싶은 건지도..

  그런데, 날카로운 선을 세우고 살지 않으려는 마음이 점점 눈을 닫는 거라면?

  그래도 쇠라는 빛을 얻었지만.

  무뎌진다는 것, 가벼워지는 걸까 무너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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